긴급 재정경제명령권[횡설수설/송평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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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의 의장을 가리키던 프레지던트(president)란 말을 통치 체제의 용어로 처음 쓴 것은 미국이다. 19세기 일본에서 미국의 프레지던트를 번역하면서 대통령이라고 했다. 당시 한자권에서는 통령(統領)이란 말이 쓰이고 있었다. 왕을 갖고 있는 일본의 눈으로 볼 때 그래도 ‘미국의 왕’인데 통령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대(大)자를 달았다. 대통령이 가지는 국가긴급권 등을 고려하면 그 느낌이 아주 부정확하지는 않은 듯하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4가지 긴급권을 갖고 있다. 긴급명령권, 계엄선포권, 긴급 재정경제처분권, 긴급 재정경제명령권이다. 앞의 두 개는 안보적인 위기, 뒤의 두 개는 재정·경제적 위기와 관련된 것이다. 긴급 재정경제명령권은 민주화 이후로는 1993년 8월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때 유일하게 발동됐다. 박정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972년 ‘경제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8·3 경제조치)이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3일 임시국회가 끝나는 다음 달 15일까지도 긴급재난지원금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긴급 재정경제명령권 발동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앞서 4·15총선 과정 중 당시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정부의 70% 지원에 대해 100% 지원 역공을 펼치면서 긴급권 발동을 요구했다. 그러나 총선 이후 김재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겸 통합당 정책위의장이 100% 지원에 반대하면서 총선 전 입장을 수정하는 듯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어제 통합당의 비상대책위원장직 제안을 수락한 김종인 씨는 긴급권 발동 요구를 이어갔다.

▷긴급 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하려면 우선 내우외환·천재지변이나 중대한 재정·경제적 위기가 있고, 다음으로 국회 소집을 기다릴 여유가 없어야 한다. 코로나19로 빚어진 사태가 중대한 재정·경제적 위기라 하더라도 현 상황이 국회 소집을 기다릴 여유조차 없는 때인지는 의문이다. 조건도 맞추지 못한 긴급권 발동이 빚어질까 우려된다.

▷대통령의 긴급권은 국회의 사전 동의를 얻을 필요는 없지만 국회의 사후 승인은 얻어야 한다. 20대 국회 임기가 다음 달 29일로 끝난다. 그다음 날부터 21대 국회가 시작된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위성비례정당과 함께 180석을 얻어 국회선진화법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됐다. 국회 사후 승인도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새 국회를 긴급권의 사후 승인으로 시작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가능한 한 긴급권 발동 없이 여야 합의로 해결하는 게 좋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긴급 재정경제명령권#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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