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前 판문점의 김정은[횡설수설/이철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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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한 유화정책의 상징인 뮌헨회담에 견줘 ‘제2의 뮌헨’이라 불리는 얄타회담. 동서 냉전의 모든 문제는 얄타에서 싹 텄다는 게 역사가들의 평가였다. 하지만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건강이 괜찮았더라면, 그리고 두 달 뒤 세상을 뜨지 않았더라면 얄타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렇듯 자유세계 지도자의 건강도 역사에 수많은 의문표를 남길진대, 독재체제 지도자의 건강은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곤 했다.

▷딱 2년 전 오늘, 김정은이 판문점 북측 판문각을 나와 군사분계선을 거쳐 남측 평화의집까지 걸은 거리는 불과 200m 남짓이었다. 그만큼 걷고도 김정은의 얼굴은 의장대 사열을 하는 동안 벌겋게 변해 있었고, 방명록에 서명할 때는 숨이 가쁜 듯 어깨까지 들썩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보다리 독대를 마치고 돌아올 땐 땀이 흥건할 정도였다. 그의 거친 숨소리를 가까이서 들은 우리 당국자들이 “김정은 상태가 큰일이네…”라고 탄식한 것도 벌써 그때였다.

▷그해 9월 평양 정상회담 땐 김정은 건강이 막간 화제로 등장했다. 백두산 케이블카 안에서 김정은은 숨을 고르며 문 대통령에게 “하나도 숨차 안 하신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뭐 아직 이 정도는…”이라고 했다. 이에 부인 리설주는 “정말 얄미우시네요”라고 웃으며 박수를 치기까지 했다. 거기엔 김정은의 무절제에 대한 은근한 타박이 담겨 있었다. 앞서 리설주는 남측 특사단과 만나서는 김정은이 금연을 권해도 듣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지 보름이다. 중태설부터 식물인간설, 사망설까지 온갖 소문이 난무하지만 북한에선 감감무소식이다. 그간 수없이 핵·미사일 도발을 했지만 이만큼 관심을 끌었을까 싶다. 김정은이 멀쩡하다면 이 상황을 한껏 즐기고 있을지 모른다. 정작 김정은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것은 오히려 주변국 몫이 됐다. 우리 정부는 “특이 동향이 없다”고 되풀이하고, 미국 대통령은 “보도가 부정확하고 옛 문서를 (근거로) 썼다더라”며 가짜뉴스로 치부하는 듯한 발언까지 했다.

▷재작년 판문점선언은 북-미 싱가포르선언, 남북 평양공동선언으로 이어졌지만 작년 2월 북-미 하노이 협상 결렬로 모든 것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남북 간엔 7·4공동선언부터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 등 수많은 합의가 있었지만 주역이 바뀌어 대화가 다시 시작되면 늘 참고자료일 뿐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게 된 게 현실이었다. 판문점선언은 지금 한쪽 서명자의 행방조차 묘연한 상황에서 2주년을 맞았다. 그 수명은 얼마나 될까.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김정은#건강 이상설#판문점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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