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라임펀드 투자자 배상[현장에서/김형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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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금융그룹 본사 앞에서 배상을 촉구하는 라임펀드 투자자들. 뉴스1
대신금융그룹 본사 앞에서 배상을 촉구하는 라임펀드 투자자들. 뉴스1
김형민 경제부 기자
김형민 경제부 기자
“늦게라도 몸통이 잡혀 다행이네요. 그런데 제 돈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 라임펀드 투자자는 23일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이 도주 5개월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에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라임자산운용의 핵심이었던 이 전 부사장의 검거와 별개로 현재로선 투자자 배상이 쉽지 않아 보여서다.

그동안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등을 통해 드러난 사실을 보면 이 전 부사장과 라임운용은 펀드 돌려막기와 횡령을 벌였고, 라임운용 직원들은 전용 펀드까지 만들어 자기들 배를 불리는 데 고객 돈을 써왔다.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금융 모럴해저드는 대부분 발생했다. 현재까지 고객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한 환매 중단 펀드는 1조6679억 원에 이른다.

문제는 이 전 부사장이나 라임운용의 사기 행각이 법적으로 모두 인정되더라도 투자자 손실을 배상하기엔 이들이 가진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금융권에 따르면 라임운용과 이 전 부사장이 배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환매 중단 금액의 10%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자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향한 곳이 라임펀드를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다. 라임펀드를 판 은행과 증권사가 라임운용의 사기 행각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를 알리지 않았거나 고객을 속여 왔다는 주장이다. 결국 판매사들도 배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판매사들은 “우리도 몰랐다. 우리 역시 피해자다”라며 배상 책임에서 발을 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실제로 라임운용 사기 행각에 일부 판매사가 연루됐다고 하더라도 이를 밝히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판매사들이 라임운용을 대신해 라임펀드를 운영하겠다며 ‘배드뱅크’ 설립을 논의 중이지만, 이마저도 업체 간 출자 규모를 두고 이견이 있어 설립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금융감독 당국을 통한 사태 해결도 쉽지 않다. 금감원의 분쟁조정제도를 활용하면 불완전 판매로 판매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라임펀드는 애초 고위험 상품이어서 배상 비율이 원금의 50% 미만이 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라임펀드 피해자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배상을 받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은 것이다.

라임펀드가 첫 환매 중단을 발표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사이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투자자들은 지금도 금융당국과 은행, 증권사 앞에서 배상을 외치며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그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지만 ‘응답 없는 외침’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달 23일 금감원 앞에서 라임펀드 배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던 한 투자자는 “대형 증권사에서 판 금융상품을 사기라고 예상할 수 있었겠냐. 펀드 가입 서류에 서명했던 그 순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했다.
 
김형민 경제부 기자 kalssam35@donga.com
#라임펀드#이종필#배드뱅크#투자자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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