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도 쓸 데가 있다[서광원의 자연과 삶]〈19〉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7일 03시 00분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모기는 나쁠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틈만 나면 ‘앵∼’ 하고 달려들어 피를 빨아먹는 녀석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무조건 완전 박멸, 모기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다들 손을 번쩍 들 것이다. 그런데 모기약을 만드는 회사도 그럴까. 모기에 물리는 건 싫어도 모기 없는 세상은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녀석들의 침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겐 성가시기는커녕 구세주일 수도 있다. 아프지 않게 슬쩍 찔러 넣는 침의 원리를 알면 아프지 않은 주사기를 만들 수 있는 까닭이다.

파리는 어떨까? 녀석들 역시 절대 반가운 손님이 될 수 없지만 파리약을 만드는 회사 외에도 녀석들을 반기는 이들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파리 애벌레(구더기)를 귀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다. 도대체 어떤 이상한 사람들이 이 지저분의 극치를 달리는 구더기를 귀하게 여긴단 말인가.

의사들이다. 미국에서는 1000곳이 넘는 병원에서 의학용으로 구더기를 사용한다. 수술 후 생기는 괴사 조직(죽은 살)에 외과용 메스를 대면 어쩔 수 없이 산 조직(건강한 세포)도 같이 잘라내야 하는데 이 어려운 일을 이 녀석들이 쉽게, 그것도 식사하면서 해내기 때문이다. 식성이 아주 까다로워서 오로지 사체(死體)만 먹는 덕분에 죽은 살만 살뜰하게 발라낸다. 맛없는(?) 산 조직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더구나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는 항생물질까지 분비하니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 길버트 월드바우어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곤충학)의 말대로 하자면 “외과의사가 하는 일을 그대로” 한다. 의사 인건비를 생각하면 애지중지해야 할 정도다.

세상엔 우리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나쁜 것들이 많지만 잘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흔히 하는 말 그대로, 좋은 것 속에 나쁜 것이 있고, 나쁜 것 속에 좋은 것이 있다. 매년 여름에 부는 태풍도 그렇다. 태풍은 없는 게 좋을 듯싶지만 어부에게는 그렇지 않다. 워낙 피해가 막심하니 드러내놓고 말할 순 없어도 그들에게 태풍은 꼭 와야 하는 것이다. 태풍이 와야 바다가 발칵 뒤집히고, 그래야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유기물들이 떠오르고, 이걸 먹으려고 몰려드는 플랑크톤을 따라 새우나 오징어가 떼 지어 몰려드니 말이다. 우리가 맛 좋고 저렴한 물고기와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사실 태풍 덕분이다. 태풍이 풍요로운 바다를 만드는 묘한 역설이다.

나쁜 게 진짜 나쁜 걸까? 그렇기도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우리의 의지를 넘어서는 세파(世波)는 어쩔 수 없기에 감내해야겠지만, 분명 그 안에는 우리가 몰랐던 유익한 것들이 있을 수 있다. 나쁘게만 보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기회를 찾아낼 수 없다. 격투기 선수들은 맞을 때도 눈을 뜬다. 눈을 뜨고 있어야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랙을 도는 속도 경기는 대체로 곡선 구간에서 승부가 갈린다. 대전환기를 맞고 있는 우리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모기#파리#구더기#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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