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의 반가운 변신[현장에서/김도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8일 03시 00분


현대차 울산공장의 노조사무실. 동아일보DB
현대차 울산공장의 노조사무실. 동아일보DB
김도형 산업1부 기자
김도형 산업1부 기자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너 나 할 것 없이 비상경영에 돌입한 자동차 업계에서 27일 흘러나온 목소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불러온 위기 속에서 누구나 쉽게 할 법한 얘기지만 이 말이 새로운 건 그 화자 때문이다. 이 말은 자동차 기업 경영진이 아니라 강성 자동차 노동조합의 대표로 꼽히는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나왔다.

현대차 노조는 이날 사내 소식지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글로벌 자동차 업체 간의 생존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우선 살아남아야 하고 또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하는 시점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합원이 생산 품질을 책임지고 회사는 고용과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과 임금 보장을 주문했지만 문장의 순서상 조합원들이 앞장서서 품질을 높여야 한다는 데 방점이 있는 것으로 읽힌다. 이렇게 해야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고객을 확보하고 일자리를 지켜낼 수 있다고도 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지만 그동안 자동차 노조에서는 이런 상식이 철저하게 무시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동안 현대차 노조는 어떤 행태를 보였나. 고객들이 목 빠지게 차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파업에 돌입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난해 말에는 작업 중 인터넷 서핑 등을 막고자 공장 내부의 와이파이를 차단하려 하자 노조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의 고비마다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현대차 노조가 변신한 건 올해 초 실리 성향을 내세운 새 집행부가 들어서면서다. 중국산 부품 수급이 끊기거나 차량 수출이 불가능해졌을 때는 신속하게 휴업에 합의했다. 이번엔 노조의 책임을 강조하며 “내 몫만 챙기는 방식보다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대차 노조 내부에선 이런 변신을 ‘사회적 조합주의’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과거 투쟁을 앞세운 노조 활동과 최대한의 임금을 확보하는 노조 활동은 모두 실패했다. 그러니 지역과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생산 물량과 일자리를 늘리는 노조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이제 노동운동도 명분 싸움이 됐다. 사회적인 명분과 여론을 등에 업지 않으면 필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장조차 돌리지 못하는 날이 많아진 요즘, 어차피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전략적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위기에도 내 몫만 내놓으라고 떼쓰던 과거의 모습과 비교하면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 같아 반갑다.

수만 명이 같은 시간대에 출퇴근하던 데서 재택근무로, 늘어지는 대면회의에서 화상회의로. 코로나19가 직장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고 있는 시대에 ‘슬기로운 노조 생활’의 기조도 바뀌는 것인지 주목된다.
 
김도형 산업1부 기자 dodo@donga.com
#현대차 노조#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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