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예술가 프랭크 워런은 2004년 11월부터 사람들에게 엽서를 나눠 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 없는 ‘인생 최고의 비밀’을 익명으로 적어 보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지하철역, 미술관,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 뿌린 엽서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비밀들은 천천히 그의 우편함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혼식 날, 난 두 사람과 춤을 췄어요. 내가 결혼한 사람, 그리고 결혼하고 싶었던 사람과.’ ‘남편에게 화가 날 때면 수프에 코딱지를 넣어요.’ ‘가끔 중국 음식을 사가지고 올 때 뚱뚱하고 외로운 실패자처럼 안 보이도록 2인분을 주문해요. 그리고 그걸 다 먹어요.’ ‘내 휴대전화가 더 자주 울렸으면 좋겠어요.’ ‘내 최고의 가족에게 사랑한단 말을 거의 못 했어요. 약해 보이는 게 두려워서.’
미국정신과협회에서 자살 방지에 공헌했다며 특별상을 받은 이 ‘비밀엽서’ 프로젝트는 투고자에게는 비밀을 털어놓을 기회를, 독자들에게는 삶의 감동을 회복할 기회를 제공했다. 낯선 이의 두려움, 후회, 수치, 욕망, 슬픔이 위로가 되었다. 마치 내 글쓰기 동료들의 글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에서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재밌게 읽은 글쓰기 동료들의 일기 두 편을 공유한다. 오늘 밤 당신도 써보길 바라며.
“첫 번째 일기: ‘이슬아 책을 읽고 싶다’
요즘 세상에 부모님 이혼이 뭐 대수냐고 핀잔을 주는 친구의 말에 괜히 눈물이 났다. 맞는 말이지. 부모 사정에 휘둘려 언제까지고 질질 짤 수 없는 노릇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옹졸한 인간이다. 내 부모님이 따로 계신 것은 아무렇지 않지만 누군가의 부모님이 전해주는 사랑 이야기를 마주할 때면 문득 질투가 날 때가 있다. 최근 가장 즐겁게 읽었던 에세이 ‘일간 이슬아 수필집’도 가족 에피소드가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책장을 넘기기 힘들어졌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 가족이라는 애정이 글에 담겨 있어서 몇 번이나 책을 덮었는지 모른다. 이토록 좋은 누군가의 가족 이야기를 잘 읽지 못할 만큼 못난이라는 게 부끄러웠다. 며칠 전에는 문득 사람이 주는 안정감에 행복을 느낀 적이 있다. 그 순간 퍼뜩 이슬아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헐레벌떡 책을 펴 마저 읽었다.”
“두 번째 일기: ‘내일은 낭비왕’
나는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제일 마지막에 먹는 사람이었다. 모두들 내게 ‘아끼다 똥 된다’ 했다. 하지만 먹고 나면 다 똥이다. 이 자린고비식 만족법은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행복한 감정에 있어서 특히 고약한 구두쇠가 되는데, 고진감래보다 감진고래를 더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순간이 오면 두렵다. 언젠가 이 행복도 끝이 나겠지? 그래서 정말 행복한 순간은 피해버리게 된다.
작년 봄,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던 일곱 살, 네 살 조카들이 형부의 직장 때문에 해외에 나가게 됐다. 이별이라는 기약이 생기자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해졌다. 출국일이 가까워질수록 우리 가족 전부는 개인적인 일을 줄이고 조카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렸다. 하지만 나만 반대였다. 자꾸만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이들이 떠났을 때 이 순간이 자꾸 생각나 너무 슬플 것 같아서 피했다. 조카들이 떠난 지 1년이 되니 그게 너무나 후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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