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명의 희생자를 낸 경기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2차 합동감식이 어제 진행됐다. 현재까지 상황을 종합하면 이번 참사는 안전규정을 무시한 시공사, 감독기관의 미온적 대처, 부실한 안전규제 등 과거 재난 때마다 되풀이된 고질적 문제들이 복합된 결과로 보인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년간 산업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해 왔다. 2012년 5명이 숨진 경북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를 계기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학물질관리법’이 2015년부터 시행됐다. 기업들은 이 법에 따른 경영부담과 비효율성이 크다고 호소해왔지만 산업안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안전규제는 계속 수위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져 왔다.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였던 김용균 씨가 2018년 사망한 이후엔 산업재해 시 원청업체의 책임을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김용균법)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현 정부는 특히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난 2017년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2018년 1월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이후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내놓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대규모 재난과 사고에 대해서는 일회성 대책이 아니라 상시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겠다”며 국민안전을 국정 핵심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또다시 과거와 비슷한 유형의 대형 참사가 난 것은 공무원들이 책상머리에서 만든 규제와 현장이 따로 겉돌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례로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화재안전특별대책을 통해 연면적 1만5000m² 이상 공사에 배치하게 돼 있던 화재감시자를 ‘가연물 보유 장소’로 전면 확대하고 용접은 현장책임자에게 승인을 받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유증기가 가득 차 작은 불씨로 폭발이 일어날 수 있는 곳에서는 화재 원인이 될 수 있는 작업을 아예 금지시키는 게 맞다.
유독가스를 내뿜어 이번 참사의 주범으로 꼽히는 건축자재인 샌드위치 패널에 대한 규제도 아직 부족하다. 정부는 2015년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해 규제를 강화했지만 여전히 바닥면적이 600m² 미만인 창고에는 샌드위치 패널 사용이 허용되고 있다.
안전 규제는 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지도록 ‘작동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더 중요하다. 안전 이행 확인 없이는 공사가 진행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생명을 지키는 안전규제가 산업현장에서 겉도는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법과 제도를 정비해 근로자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사태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