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정은 잠행이 보여준 체제 불투명성… 그런 金에 좌우되는 남북관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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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 이상설이 제기됐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잠적 20일 만인 1일 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극적인 재등장으로 자신을 둘러싼 유고설 등을 잠재웠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은의 20일간 행적이 드러난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의 첩보전과 각종 억측을 부추긴 이번 잠행은 21세기 정상 국가에서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비정상적인 행태다. 이런 북한 체제의 선의에 기대어 비핵화 협상을 하고 관계 진전을 도모해야 하는 남북관계의 취약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김정은의 행적을 공개한 지 하루 만인 어제 북한군은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리 군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적대행위를 금지한 9·19 남북군사합의를 처음으로 위반한 도발이다. 김정은이 잠적한 상황에서도 남북 철도 연결 준비에 착수한 우리 정부의 남북협력 재개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는 합의 위반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북측의 우발적인 오발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군 당국이 북측의 의도를 사전에 예단하는 것은 진상 파악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설령 우발적 오발이라 해도 엄연한 합의 위반이므로 북측의 설명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

그동안 잇따른 미사일·방사포 발사 도발을 해도 미국 등 국제사회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던 북한은 이번 김정은 잠적을 통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물론 북한 최고지도자가 장기간 공식 매체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극적으로 등장한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정은이 20일 이상 사라진 건 집권 후 6번째다. 이번엔 신변 위협을 느낄 만한 상황적 요인이 없는 상태에서 잠적해 유고설 등에 불을 지폈다.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체제의 불투명성과 비정상성을 다시 드러냄으로써 정상 국가 궤도를 더 이탈했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이번 김정은 잠적 논란은 핵무장한 북한의 내부 움직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정보력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확인시켜 줬다. 한미 간 정보 교류가 원활했는지도 점검해 봐야 한다. 북한에 특이 동향이 없다고 일관한 우리 정부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든 것이 괜찮기를 바란다”고 하는 등 한미 양국 지도부의 발언에서 일부 시각차가 노출됐다. 핵을 가진 예측 불가능한 정권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한미 동맹의 정보 공유에 한 치의 빈틈도 있어선 안 된다.
#김정은#비료공장#준공식#유고설#비무장안전지대#총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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