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어제 오후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사과문 발표는 시민단체 교수 등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3월 경영권 승계 의혹 등과 관련한 이 부회장의 사과를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삼성은 반도체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과 제품으로 글로벌 기업이 돼 우리 경제에 기여하고 있지만 기업윤리와 사회적 소통에서는 비판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 비판과 법적 논란은 주로 경영권 승계와 관련돼 있다. 이 부회장이 이런 문제에 대해 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폭넓게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의미가 크다.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던 ‘무노조 경영’의 종식을 공식 선언한 것도 주목된다. 국내 최고 수준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보장한다고 해서 헌법에 보장된 노조 결성 등 노동 3권을 제약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 부회장은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해고자 문제 등을 포용과 화해로 슬기롭게 해결함으로써 약속의 진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삼성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약속도 의미가 크다. 물론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 경영을 누가 하는 게 좋은지는 오로지 경영을 가장 잘할 사람을 이사회와 주주들이 기업 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이 “뛰어난 인재들이 나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한 것은 우리 기업 문화에 적잖은 변화의 단초가 될 것이다.
현재 삼성과 한국 경제를 둘러싼 안팎의 도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 부회장의 말처럼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시장의 룰은 급변”하고 있으며 “최고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엄중한 경제 상황에서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의 비전과 역할이 특히 중요한 이유다. 이 부회장의 사과와 선언이 한국 경제와 기업사에 큰 획을 긋는 계기가 되기 위해선 확실한 실천이 이어져야 한다.
한국이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는 데 삼성을 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동안 한국 경제와 사회에 기여한 만큼 한 차원 높은 혁신과 사회적 공감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경제와 사회에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삼성의 선언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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