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고지도자의 건강 이상 여부를 확인하려고 각국 정보당국은 그동안 치열한 정보전을 벌여 왔다. 2008년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른바 ‘양치질 사건’도 있었다.
그해 8월 김정일의 공개 활동이 없자 이상설이 돌았다. 김성호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국회를 찾아 “부축하면 일어설 정도” “스스로 양치질할 수준”이란 표현으로 김정일의 상태가 공개됐다. 국정원의 세밀한 정보력이 확인된 것이지만 우리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노출에 대한 우려도 함께 나왔다.
당시 김정일 상태는 프랑스 정보당국이 미 중앙정보국(CIA)에 전달했고, 이를 국정원이 공유받았다고 한다. 김정일의 뇌졸중 수술을 위해 프랑스 의사가 방북한 것이 정보 파악의 단초였고, 우방국 간 공유가 이뤄진 것이다.
이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변 이상설과 관련해 청와대가 “특이 사항이 없다”고 밝혔던 것도 한미 당국 간 정보 교환의 힘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고화질 영상정보는 미국 정보위성 등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 정부의 대북 정보력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강점이 휴민트였는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뿐만 아니라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약화됐다는 말들이 나왔다. 전직 정보당국 고위 관계자는 “김대중 정부 들어서면서 약 400명의 대공 인력이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보수 정권 들어서도 보강이 이뤄지지 않았다. 대공 인력의 입지도 정보기관 내에서 약화됐다”라고 전했다.
이런 우려도 있었지만 정부는 이번에 김 위원장의 신변과 관련해 “특이 사항 없다”고 자신 있게 밝혔다. 이후 김 위원장이 잠행 20일 만에 등장해 부축 없이 걷는 등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정부의 예측이 상당 부분 맞는 결과로 나타났다. 대북 정보력을 입증한 계기였고, 국민 불안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정부와 국정원은 김 위원장이 “수술이나 시술을 받은 적이 없다”거나 “공개 활동을 안 할 때도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해왔다”는 정보를 추가 공개하고 있다. 일각에선 북한이 김 위원장의 정상적인 영상을 이미 공개한 마당에 불필요하게 추가 정보를 꺼낸다는 말도 나온다. 북한은 우리가 파악한 대북 정보 상황을 분석해 차후 대응할 것인데 우리의 추가적인 패를 보여줄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게다가 앞서 정부의 정보력이 불확실했던 적도 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한미 당국은 며칠이 지난 뒤에야 사망 사실을 파악했다. 북한이 진정으로 감추고 싶어 하는 극비사항엔 한미 정보자산이 닿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 근무했던 제임스 서먼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최근 김 위원장의 건재가 확인된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일이 사망한 뒤 이틀이 지나서야 사망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의 건강 상태에 대해 추측하고 싶지 않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대북 정보력에 부쩍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정부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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