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날’을 아십니까[벗드갈의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8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대학원행정학과재학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대학원행정학과재학
얼마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한국에서는 1년 중 5월에는 각종 행사와 기념일이 너무 많아서, 프로그램 주제도 ‘5월’이었다. 보통 5월은 휴일도 많기 때문에 좋다는 생각과, 동시에 경제적으로 많은 지출이 발생하기 때문에 꼭 좋지만은 않은 달로도 기억하고 있었다. 방송 출연을 계기로 한국에서 유독 5월에는 기념일이 왜 많은지, 깊은 고민을 할 수 있었다.

달력을 보니 5월에는 기념일이 무려 10개고, 그중 가족과 관련된 날은 3개였다. 여기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부부의 날이 들어간다. 이 셋 중 필자에게 가장 흥미로운 날은 부부의 날이었다. 한국에서 부부의 날은 5월 21일이다. 여러 날 중 부부의 날을 왜 21일로 지정했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었다. 그것은 ‘2+1’, 이른바 ‘두 개(부부)가 합치면 하나(아기)가 생긴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추측에 불과했기 때문에 더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하니 의미가 달랐다.

부부의 날의 진정한 의미는 부부 관계의 개인적, 사회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평등하고 민주적인 부부 문화를 확산시키고 가족 구성원의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도록 하기 위한다고 돼 있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둘이 하나가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부부의 날의 진정한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필자는 주변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부부의 날의 진정한 의미를 묻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반응이었다. 물론 필자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고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기념일과 비교하면 부부의 날에 대한 포스팅이나 홍보물은 많이 보지 못했다.

방송 출연을 준비하면서 든 두 번째 생각은 한국 부부의 애정 표현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 드라마를 여럿 시청했다. 당시 필자가 보고 온 드라마를 소개하자면 ‘첫사랑’, ‘올인’, ‘장밋빛 인생’, ‘야인시대’ 등이었으며,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의 연애와 결혼생활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예전 드라마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권위적이면서 어려운 존재로 연출됐다. 반면 어머니들은 가정과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문제를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부부의 관계, 그들 속 갈등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까. 최근 부부 사이를 그린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드라마 속에는 예전과 달리 여성의 능력과 사회적 위치가 높게 설정됐다. 세대와 시기가 변하면서 드라마 내용도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드라마는 연애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으며, 현실의 연애는 어떨까. 필자는 대학 시절부터 한국 사람들의 데이트를 목격하기도 하고 듣기도 했다. 특히 결혼한 선배들에게 연애 때 했던 애정 표현이 결혼 뒤에도 지속되는지 물었다. 그들은 애정 표현의 빈도가 줄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연애는 연애고 결혼은 결혼이다’였다. 연애와 결혼을 별개로 생각하는 이들과 달리, 몽골이나 러시아 출신 남자들은 애정 표현과 로맨틱함을 평생 잃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들었다. 이는 여성에게도 해당된다. 한국에서는 기념일이나 행사를 형식적으로만 치르는 경우가 많지만 해외에서는 기념일이나 파티를 즐기면서 한다. 한국에서 수년 살면서 기념일에 깊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했다. 기념일은 마치 사진을 남기거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같다.

얼마나 부부의 날이 필요했으면 기념일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가족 단위인 부부가, 꼭 이날이 아니더라도 서로를 아끼고 애정 표현을 실컷 하면서 사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동안 들은 말 중 제일 듣기 싫은 표현은 ‘무뚝뚝해서 그렇다’, ‘예쁜 말을 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해서 그런다’, ‘가족 간에 그럴 필요가 없다’ 등이다. 이런 말은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기념일이라서 챙겨 주는 것보다는 평소에 이벤트를 하는 습관과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대학원행정학과재학
#부부의 날#기념일#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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