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도 그렇지만, 중세 세계에서는 부자들이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남들과 차별화할 필요가 있었다.”
―피터 프랭코판 ‘실크로드 세계사’ 중
실크로드에는 비단, 보석, 향신료, 모피, 말, 차 같은 사치품들이 흘러 다녔다. 이 상품들은 주로 부유층들이 그들의 지위와 위신을 위해 소비하던 상품이란 공통점이 있다. 이런 상품을 소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하위 계급과의 차별성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근세까지만 하더라도 무역은 환경과 짐승과 인간의 위협 속에서 목숨을 걸어야 했던 일이었으니 실크로드를 따라 이런 사치품이 거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위협을 딛고 수천 km를 이동하여 대나무 공예품이나 팔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니 말이다. 이 점에선 무역의 원동력을 필요가 아니라 욕망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욕망이란 단어가 갖는 이미지 때문에 우리는 욕망을 부정적으로 여기곤 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온 힘을 다해 욕망을 부정하는 데 애써왔다. 로마시대를 보더라도 비단옷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비단옷은 입은 자의 몸매를 가리지 못하므로 옷을 입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고 부부관계의 기반을 흔든다’는 이유로 금지법을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로마가 멸망해도 비단의 인기는 조금도 변함없었다는 점은 인간과 욕망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걸 잘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에 욕망한다. 그리고 각자의 구매력으로 그 욕망을 산다. 무역의 중심이 사치품에서 보편상품으로 이동한 것도 평민 계급의 구매력 상승 덕분이었다. 이전엔 상품을 살 수 없었던 평민들도 구매력이 생기면서 그 욕망을 실현하고 남들과 차별화를 시작한 것이다. 현대에 들어 금욕 또한 하나의 산업이 되었단 점은 대단한 아이러니다. 모두가 구매력을 가지고 모두가 욕망을 소비할 수 있는 시대에는 금욕이 차별화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보자면 금욕 또한 욕망으로 소비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는 욕망을 소비하는 동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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