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n번방 방지법’ 패키지 법안의 한 축인 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15일까지인 20대 마지막 임시국회 회기 중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n번방 사건의 재발을 막겠다는 이 지당한 취지의 법안에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높아지고 있다. 왜일까.
10일 국회 및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은 불법촬영물 등 유해 콘텐츠 유포에 대해 카카오나 네이버, 텔레그램 같은 인터넷 기업에 방지 책임을 지우는 게 골자다. 개정안 44조의 9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인터넷 서비스 기업은 불법촬영물 등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책임자를 지정해야 하며, 해당 책임자는 불법촬영물 등의 삭제, 접속 차단 및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 등을 담당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적정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고 방송통신위원회가 판단하면 사업의 등록 취소 및 폐지도 추진할 수 있다.
방통위 및 여당 측은 “온라인 유해물 유통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해외 기업에 대해 구속력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정안 제안 이유에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신속한 삭제와 접속 차단이 우선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이번 개정안이 사업자의 ‘사후 조치’가 아닌 ‘사전 방지책’을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이 발효되면 기업은 당장 무엇이 불법촬영물인지 일일이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법안에서 그 판단 기준과 확인 방법은 모두 빈칸으로 남겨져 있다. 이미 신고된 게시물에 대해 자체 판단에 따라 삭제 조치를 하고 있는 페이스북도 정보 유출과 프라이버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이용자들과 시민단체들에선 “사전 방지를 위해서는 사실상 모든 온라인 게시물이나 메신저 대화방이 검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 기업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n번방의 주 무대이자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텔레그램은 현재도 각국의 수사에 비협조적이다. 개정안에 역외 조항이 있다 해도 실질적으로 해외 기업이 이를 따를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각국 정부도 온라인 유해물과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기업의 사전 방지 책임을 법으로 규정한 곳은 찾기 어렵다. 독일의 ‘네트워크법집행법(NetDG)’과 프랑스의 ‘정보조작투쟁법’ 등은 유해 게시물 신고·발견 직후 삭제 조치를 법으로 강제한 사례다. 미국은 사업자들의 자율규제를 지원하는 한편 관련 수사기관에 힘을 실어주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법안을 검토한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사전 조치 강제보다는 현행 자율 규제를 지원하고, 수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국민적 공분과 아픔을 야기한 ‘n번방’인 만큼, 법망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욱 면밀하고 강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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