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군대의 약점[임용한의 전쟁史]<109>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2일 03시 00분


관포지교는 관중과 포숙아의 진한 우정의 대명사이다. 후대에는 ‘우정’에 방점이 찍혔지만, 원래 의미는 진영을 뛰어넘어 국가의 미래를 우선시하는 태도, 통 큰 결단의 결과다. 관중은 제나라 왕위 후계자 경쟁에서 환공의 반대편에 섰고, 환공을 죽일 뻔도 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포숙아의 추천으로 관중은 환공의 재상으로 스카우트됐다. 관중은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혁신적인 부국강병책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선구가 됐고, 제 환공에게 춘추시대 최초의 패권을 안겨주었다.

이후 제나라는 전국시대까지 전국 7웅의 하나로서 강호의 지위를 유지한다. 그러나 최초의 선발주자였다는 명성에 비하면 제 환공 시대 이후에는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 스포츠에 비유하면 매년 전문가들이 그해 우승팀을 예상할 때 강호 축에는 들지만, 우승 전력으로는 거론되지 않는 팀과 유사하다. 전국시대의 통일 전쟁에서 제나라는 장점이 많은 나라였다. 산둥 지역은 전통적으로 소금과 철의 산지다. 전략물자가 풍부하고 재정이 넉넉하다. 이 지역 사람들은 타 지역에 비해 체격이 크다고 알려졌고, 요동 유목민 군대를 받아들이기도 쉬웠다. 중앙부에 위치한 나라들은 서로 정신없이 각축전을 벌여야 했지만, 제나라는 동쪽에 치우쳐 있어서 분쟁을 최소화하고 힘을 축적하기도 유리했다.

제나라는 왜 장점을 살리지 못했을까? 오자병법의 저자 오기는 제나라 군대가 겉으로는 중후해 보이지만 견고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중후하다는 의미는 무장도 훌륭하고 갖출 것은 다 갖춰서 저력 있는 군대처럼 보인다는 의미다. 견고하지 못하다는 말은 전투 의지가 강하지 않고 인내력이 없다는 의미다. 중후한 군대가 왜 견고하지 못할까? 풍요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절박한 사람은 모험가가 되고 만족하는 사람은 기회주의자가 된다. 기회주의자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기회를 모색하는 사람이란 의미가 아니라 기회가 저절로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사람을 말한다. 그것이 편안함이란 과실 속에 숨은 독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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