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 가구의 월평균 소비 지출액이 전년도의 253만8000원보다 3.1% 줄어든 245만7000원이었다. 소비 지출이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줄어든 것인데,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가 없었다는 불편한 진실도 함께 드러났다. 그런데도 이를 발표한 통계청은 조사 방법이 다르니 과거와 비교하지 말라고만 되풀이했다. 통계청이 설명 대신 해명하는 일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통계의 문제점이 거론될 때마다 ‘해병대 사망률은 뉴욕 시민의 사망률보다 낮다’고 했던 과거 미국 해병대 모집 광고가 곧잘 인용된다. 마치 해병대의 군사작전 참여가 뉴욕에서 사는 것보다 안전하니 마음 놓고 지원하라는 식의 주장이다. 건강한 젊은이가 대부분인 해병대 지원자와 노약자 노숙자가 모두 포함된 뉴욕 시민 사망률을 같은 비교 대상으로 올려놓은 부적절성 때문에 이 광고는 곧바로 사라졌다.
▷과거와 비교하지 못하는 통계자료는 반쪽짜리나 마찬가지다. 그건 3년간 통계 기준을 2번이나 바꾼 탓이다. 표본을 바꾼 현 정부의 통계 기준 변경 배경에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정부는 저소득층의 임금 수준을 높여 소비가 늘어나면 기업 이윤 증가로 이어져 성장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수단인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규직 확대와 관련된 지표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양극화만 커진 결과를 발표한 황수경 전 통계청장이 경질됐고, 후임 강신욱 청장이 지난해 표본을 변경했지만 소득주도성장의 효과를 뒷받침할 결과는 나오지 않은 것이다.
▷통계청은 지난해 비정규직 근로자가 748만1000명으로 역대 최대로 집계됐을 때도 국제노동기구(ILO) 통계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통계청 설명대로 바뀐 기준을 적용했을 때 비정규직은 35만∼50만 명이 늘어나는 것에 그쳐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86만7000명이 늘어났다. 비정규직 비중만 커졌다.
▷통계 기준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켜야만 할 금과옥조인 것은 아니다. 지난달 하순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다시 급증했는데, 군인과 미국령 거주자들을 포함하는 등 집계 기준을 바꿨기 때문이다. 그건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한 통계적 오류 조정이었다. 반면 중국은 2월에 확진자 판정 기준을 바꿨다가 환자가 급증하자 1주일 만에 집계 방식을 다시 바꾸는 고무줄 통계를 선보였다. 잘못된 통계도 문제이지만, 정권의 입맛에 맞는 ‘코드 통계’는 나라의 정책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국가의 신뢰도만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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