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엄마가 가라고 하니까’ ‘꼭 다녀야 한다면서’ 같은 답을 하거나 아니면 뚱한 표정으로 쳐다볼 것이 분명하다. ‘미래를 위해서’ 같은 정답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 대다수 아이들은 법으로 강제된 의무교육이라서 학교에 다닌다.
대학입시를 치르기까지 초중고교 12년 시간표는 배워야 할 과목과 내용, 수업시수 등이 빈틈없이 짜여 있다. 아이들은 그에 따라 똑같은 수학 문제를 풀거나 영어 단어를 외운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공교육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공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수업 및 등교를 선택하는 전례 없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온라인 개학을 하고 원격 수업을 하는 동안 학생들은 재미있는 수업을 먼저 듣거나, 재미없는 수업을 1.5배속, 2배속으로 빠르게 돌려 들었다. 틀어만 두기도 한다. 공부에 의욕이 있다면 같은 내용을 다룬 인터넷 강의를 찾아 들었다. 반드시 이수해야 할 수업이 정해져 있어도 교실에 꼼짝없이 앉아 있는 것에 비하면 상당한 자율성을 갖는다. 온라인 수업을 학교 밖 강의와 비교할 수 있다는 점도 교육 수요자인 학생에게 힘을 실어준다.
여기에 더해 학생과 학부모는 등교 개학 이후 학교를 갈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가정학습을 하면 연간 2주 내외는 등교하지 않아도 출석으로 인정해 준다. 사실상 등교 선택권이 주어진 셈이다. 이태원발(發) 집단 감염으로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 우려가 큰 상황에서 입시가 임박한 고3과 중3을 제외하고는 가정학습을 선택하는 비율이 꽤 높을 것이다. 애초에 학교에 왜 가야 하는지 몰랐던 학생들과 이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학부모의 이해가 일치할 가능성이 크다.
‘학교의 미래, 미래의 학교’의 저자 김재춘 영남대 교수(전 교육부 차관)는 “학교가 자생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나. 강제로 다니게 하고 그래야 상급 학교 진학 자격을 주므로 유지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00년 전 탄생한 근대 학교의 유효기간이 코로나19 사태로 더 짧아질 것 같다”고 했다.
등교가 미뤄진 두 달여 동안 학교는 온라인 개학을 했고 교사는 원격 수업을 제공했다. 누구도 총대를 메지 않으려던 미래 교육이 최소한 5년은 앞당겨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수업·등교 선택권이 원격 수업만큼이나 학교를 바꿀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해 학업을 중단한 초중고교생은 5만2539명. 이미 탈(脫)학교 흐름이 거센데 코로나19로 ‘꼭 학교에 가야 하나’는 의문이 커지기 시작했다. 수업과 등교의 선택권을 경험한 학생들은 획일적인 공교육에 코로나 이전처럼 순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혁신이 두려운 교육 공급자도, 입시 경쟁으로 앞만 보던 수요자도 코로나19 사태로 깨달았다. 네모난 교실에 모여 책상 줄을 맞춰 앉아 똑같은 교과서를 배우는 것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식이라면 학교 밖에도 배울 곳이 널려 있다. 코로나 이후, 학교의 기능과 역할이 재정립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영영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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