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남산에 올라갔다가 황학동 풍물시장에서 세월의 흔적을 구경하고 수집하는 게 큰 즐거움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즐거움을 빼앗겨 버렸다. 풍물시장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심심하던 차에 유튜브에서 온라인 경매하는 곳을 발견했다. 언택트 시대에 발맞춰 이제 골동품 경매도 유튜브로 진행하는구나. 경매에는 분재부터 수석, 도자기에 브론즈 작품들, 골동품까지 없는 게 없었다. 처음엔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어서 저녁부터 자정까지 경매를 지켜봤다. 보다 보니 우리나라 작가의 브론즈 작품에 매력을 느끼게 됐고,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에 정보를 찾아봤다.
일단 한국 브론즈 작가 중 온라인 경매에 자주 등장하는 작품은 설선오 작가, 오병근 작가, 김번 작가의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설 작가의 작품은 압도적이었다. 12마리의 말이 하늘을 나는 작품부터 멋진 스윙을 하는 골프 선수, 그리고 물동이를 지고 가는 소년의 모습까지 많은 작품이 있었다. 오 작가는 주로 여인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김 작가는 1984년에 보신각 신종을 제작하고 미국에서도 활동하는 유명한 작가로 작품이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그렇게 국내 작가의 브론즈 작품에 푹 빠져 있었는데, 지난주 토요일 저녁 경매사가 보여준 유럽 브론즈 한 점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허리에는 하프를 차고 머리에 월계관을 쓴 걸로 봐서 그리스 신화 속 디오니소스를 모티브로 한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제가 아주 아끼는 작품입니다. 일단 높이가 65cm고요. 뒤에 작가 사인이 있고, ‘collection francaise’라고 쓰여 있는 걸로 봐서 1950년대 프랑스 작품인 것 같습니다. 경매 들어갑니다.” 많은 사람이 가격을 제시했고 나도 뛰어들었다. 특히 나를 설레게 했던 건 작가의 사인 옆에 있는 마크였다. 보이스카우트 로고를 닮은 저 마크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브랜드 마크와 비슷했고, 그 브랜드 제품이라면 대박이었다. 경매가는 치솟았고 나도 끝까지 따라가서 결국 낙찰 받았다. 진짜 그 브랜드에서 만든 거라면 가보로 물려줘도 될 정도로 멋진 작품이라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까지 디오니소스와 그 브랜드를 공부하며 ‘학창시절에 이렇게 공부를 했더라면 하버드대 법대에 가 있을 텐데’라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디자이너 후배에게 전화를 해서 자초와 지종을 모두 설명했는데 “형, 그 브랜드에서 브론즈 작품을 제작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보는데요. 일단 작품이 오면 보여주세요. 알아볼게요.” 그리고 3일을 기다려 택배로 작품을 받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는데, 어라! 술잔을 들고 있는 손목이 부러져 있었다. “브론즈가 휘면 휘지, 부러질 리가 없는데, 뭐지?” 나는 경매장에 전화해 제품에 하자가 있다고 말하고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부러졌다고요? 그거 브론즈 아닌가요?” “브론즈라고 해서 샀는데,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결국 디오니소스를 반품하고 돈도 돌려받았다. 아쉽지만, 이번 기회에 브론즈 작가와 디오니소스에 대해서는 원 없이, 알차게 공부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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