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 우리 군 감시초소(GP)에 총격을 가한 3일 이후 한 군 간부가 한 말이다. 현역 군인인 만큼 우리 군 편에 서려 해봐도 이번 사안에 대한 군의 대응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군 당국이 사건 발생 당일 진행한 언론 브리핑의 초점은 북한군 변호에 맞춰져 있었다. 당시 군 관계자는 우리 군 대응사격은 몇 시에 이뤄졌는지, 북한군과 우리 군이 각각 이용한 총기 종류가 무엇인지 등 총격 사건 발생 시 기본적으로 공개해온 사건 개요조차 함구했다. 그 대신 어떤 대응 조치가 이뤄졌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가운데 “현장에서 우리 군의 대응은 잘 이뤄졌다”고 ‘셀프 평가’했다.
군은 당일 대응 조치에 대해 군사 보안을 지키는 선에서 조목조목 설명하면 될 일이었다. 그것이 잘한 조치였는지에 대한 평가는 사건 팩트에 기반해 판단하는 언론과 국민의 몫이다.
더 큰 문제는 군이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군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의 질의에 앞서 진행한 사건 설명의 상당 부분을 군이 왜 이번 총격을 북한의 우발적 오발로 평가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짙은 안개로 시계(視界)가 나빴던 점 등 의도적 도발로 볼 수 없는 서너 가지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북한군이 근무교대를 하며 화기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오발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이 역시 군은 객관적인 팩트만 제시하면 될 일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이번 총격이 의도적 도발인지, 실수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역시 언론과 국민이 할 일이지 사건 당일 군이 앞장서서 할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사건 개요가 당장 파악할 수 있는 것인 데 반해 북한의 의도는 심도 있는 조사를 거친 뒤 보다 신중하게 결론내야 할 부분이었다. 군은 정반대로 사건 개요는 조사 중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보류하면서도 의도성 여부에 대해선 전례 없이 신속하게 답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 이상 지난 11일 현재도 군은 구체적인 사건 개요에 대해선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가 조사 중이어서 추후 설명하겠다”는 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나중에 설명하겠다는 말은 결국 사안에 대한 관심이 식은 다음에는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이 사건과 연관된 군 고위 관계자들은 사건에 대한 관심이 식기만을 기다리는 듯하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군은 총격으로 피해를 입은 우리 군 GP를 언론에 공개할 계획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GP 외벽의 북한군 고사총 탄흔은 이번 총격이 우발적 오발인지를 가려줄 결정적 증거다. 현역 장교인 A는 “2018년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 초근접 GP 시설물을 철거할 때는 굴착기 진입부터 모든 과정을 연일 생중계하다시피 하며 GP 곳곳을 공개했던 게 군 아니냐”며 “파격 공개까지 불사하던 군이 이번엔 ‘GP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공개하기 어렵다’며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한 사안은 GP를 공개하면서 정작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최소한의 공개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선 ‘GP의 특수성’을 명분으로 난색을 표하는 등 원칙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군 내부에선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군 내부까지 번지면서 GP 총격 사건에 집중됐던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분산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는 데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번 사건의 진실은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분명한 건 북한을 변호하는 듯한 태도와 사건 현장인 GP는 물론이고 사건 개요 공개조차 꺼리는 모습은 군답지 않다는 것이다. 군의 이런 모습은 남북 대화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통일부를 연상시킨다. 북한을 코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분단국가의 군은 냉정하게 군사·안보적 판단만 하면 될 일이다. 대북 유화책이 정부 정책 기조라고 해도 통일부 역할까지 하며 북한 변호인을 자임하는 분단국가 군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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