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누엘 칸트는 모든 거짓말이 잘못이라고 했다. 인간애에서 나온 거짓말까지 잘못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나 자신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더라도 ‘살인자들에게조차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럴까.
1980년 5월 광주를 다룬 제니퍼 헌틀리의 ‘제니의 다락방’은 칸트와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해외로 보내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미국인 선교사 찰스 베츠 헌틀리(한국명 허철선) 목사, 그의 딸이 이 소설의 원작자다.
광주 양림동에서 태어난 제니(퍼)는 1980년 당시 만 10세의 소녀였다. 5월 20일 늦은 밤, 한국인 목사들이 제니의 집에 찾아왔다. 군인들이 집까지 수색해 학생들을 잡아가자 불안해진 그들이 자식들을 숨겨달라고 온 것이었다. 군인들이 찾아오면 거짓말을 해달라고 했다. 제니의 부모는 자기 가족까지 위험할 수 있었지만 그 학생들을 다락방에 숨겼다. 그리고 입양한 한국인 아들을 포함한 자식들에게 누구에게도, 심지어 다른 선교사나 미국인에게도 발설하지 말라고 했다. 필요하면 거짓말을 하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에게 인간애에서 나온 거짓말은 잘못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국인들을 더 받아들여 다락방에 살게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총알이 벽을 뚫고 들어올 게 두려워 가족을 포함한 모두가 창문도 없는 지하실에서 잠을 잤다. 그들은 손님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롯처럼.
‘제니의 다락방’은 책의 후반부에 수록되어 있는 제니퍼 헌틀리의 영어 원문 ‘5월의 열흘’을 이화연 작가가 허구를 가미해 재구성한 소설이다. 작가가 둘인 셈이다. 그 덕에 우리는 사실과 허구가 섞인 훌륭한 어린이용 5·18 소설을 갖게 되었다. 이 소설은 실존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윤리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을 위한 일인데 거짓말이면 어떠한가. 제니의 집 다락방과 지하실은 절대적인 진실 원칙을 고수한 칸트 같았으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윤리적인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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