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의 매력이 집중된 곳은 터미널 천장에 줄줄이 매달려 비행기의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텔레비전 화면들이다. 트리에스테, 취리히, 파리. 화면들의 계속되는 호출은 단단하게 굳어버린 듯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손쉽게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냥 복도를 따라 내려가서 비행기에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몇 시간 뒤에 아무런 기억이 없는 장소, 아무도 우리의 이름을 모르는 장소에 착륙할 것이다.”
영국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이 2004년에 쓴 에세이 ‘여행의 기술’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행 중에서도 비행기를 타고 가는 해외여행의 시작은 공항이다. 여행의 설렘을 가장 먼저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바꿔놓은 많은 것들 중에는 여행도 포함돼 있다. 많은 국가들이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공항을 봉쇄하고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어 해외여행은 당분간 엄두를 못 내는 요즘이다.
하늘길이 막히자 해외여행 대신 국내 여행으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다. 국내도 북적이는 곳보다는 사람들이 적으면서 자연 친화적인 장소가 인기다. 글로벌 여가 플랫폼 야놀자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5일까지 국내 숙소 이용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9% 늘었다. 지역별로는 경기, 서울, 강원이 각각 18.2%, 17.9%, 9.5%로 1∼3위를 차지했다. 인구 밀집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독채형 숙소가 많은 펜션 이용률은 지난해 대비 265.2%나 급증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국내 여행조차 가기 힘든 사람들은 모바일이나 PC, TV를 통한 ‘디지털 여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있다. 각국의 유명 관광지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영상들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조회수가 늘고 있다.
알리바바그룹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가 미디어 커머스 채널 ‘타오바오 라이브’를 통해 공개한 여행 콘텐츠는 오픈 첫날 시청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티베트에 있는 달라이 라마의 궁전 포탈라궁을 조명한 라이브 방송은 첫 방송만 100만 명 이상이 봤다. 이는 작년 한 해 포탈라궁 방문객보다 많은 숫자다.
여행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잠잠해진 뒤에도 국내 여행 수요는 이전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돌이켜보니 여행지에서의 감동은 국내외가 다를 게 없었다. 해외의 유명 관광지에서 느낀 즐거움도 있었지만,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갔던 남해 보리암에서 바라본 바다,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아직도 여운이 남아 있다.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가 지난해 국내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여행객은 대한민국 전체의 6.1%만을 여행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160여 개 행정구역 중 9.9개에 해당한다. 코로나19 시대에 위생과 안전을 지키면서 가볼 만한 국내 여행지가 많다는 뜻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여행을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이라고 정의했다. 의지만 있다면 꼭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스마트폰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도 여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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