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의상을 입은 젊은 남자가 우리를 보고 웃고 있다. 자신감과 유머 넘치는 표정, 위풍당당한 포즈,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 위로 올린 모자와 콧수염 등 약간 거만하고 허세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왠지 애정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굴까?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거장 프란스 할스가 그린 이 그림의 제목은 ‘웃고 있는 기사’다. 하를럼에서 평생 활동했던 할스는 생기 넘치는 초상화로 일찍이 명성을 얻었다. 그렇다면 그림 속 남자는 하를럼의 기사일까? 아니다. 이 제목은 모델의 복장과 자세 때문에 19세기 후반에 붙여진 것이다. 원래는 ‘남자의 초상’으로 불렸고 군인이나 관리, 또는 부유한 상인의 초상이란 견해도 있지만 정확한 신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남자는 제목처럼 웃고 있는 것도 아니다. 모나리자처럼 미소 짓고 있을 뿐이다. 확실한 건 그림 속 모델의 나이가 26세라는 거다. 이건 화가가 그림 오른쪽 상단에 이례적으로 모델의 나이와 작품 제작 연도를 써놓았기 때문에 아는 정보다. 사치스러운 복장과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보아 그는 귀족이나 기사는 아니어도 엄청난 자산가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소매를 장식한 화려한 자수다. 타오르는 횃불, 화살, 하트, 연인들의 매듭 등 사랑의 즐거움과 고통을 상징하는 문양들이 빼곡히 수놓아져 있다. 아마도 이 그림은 연인을 위한 사랑의 선물이거나 구애를 위한 목적으로 주문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렇다면 이 청년의 온화한 눈빛과 장난기 어린 미소는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것일 터다. 부와 젊음, 열정과 자신감을 생생하게 담은 이 초상화는 주문자를 분명 만족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인생 풍파를 어느 정도 경험한 40대 화가는 인생무상의 교훈도 주려 했던 듯하다. 이름 대신 나이만 새김으로써 부와 명성은 무상한 것이며, 뜨거운 사랑과 빛나는 청춘도 영원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