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봄을 느끼게 하는 징조는 여러 가지가 있다. 3월 말쯤 아직 창백한 대지 위에서 만져지는 온기, 달빛 아래 하얗게 핀 벚꽃, 한말(韓末)에 조선을 방문했던 헐버트는 한국인들은 개나리, 벚꽃과 같이 잎이 나기 전에 피는 꽃을 좋아한다고 했다. 긴 겨울 동안 봄을 고대하다 보니 누구보다 빨리 피는 꽃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필자는 봄비 후에 수분을 머금은 잎의 신선한 빛을 가장 좋아한다.
정확한 통계기록은 없지만 전쟁사의 관점에서 보면 5월은 전쟁 걱정이 제일 적은 달이었을 것이다. 북방 유목민족들은 추수철에 습격한다. ‘천고마비’는 가을을 상징하는 고사성어가 되었지만 원래는 가을이 되면 변방의 유목민족이 쳐들어올 때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장거리 원정은 겨울을 이용하는데, 보통은 1월이 지나면 회군했다. 음력 2월이면 고향에 돌아가 생업에 종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구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침략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음력 4, 5월에 왜구의 침입이 있었던 사례가 제법 있다. 그러나 왜구의 침입이 제일 왕성한 시기는 11월에서 2월 사이의 겨울이거나 오히려 7, 8월이었다. 역시 추수철 이후를 노리는 이유도 있고, 계절풍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상비군이 풍부하고, 국가 재정이 넉넉한 나라는 이런 계절적 요인에 구애받지 않았다. 고대에는 이런 나라가 많지 않았지만 근현대로 오면서 상시 전쟁이 가능한 나라가 늘어났다. 국부(國富)가 증대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인류의 행복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지만 불시전쟁의 위험도 함께 높아진다. 문명의 역설이다. 1950년 5월 일본은 전 세계의 미군 주둔지 중에서도 제일 안락한 곳이었다. 병사들은 훈련보다 바지를 다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한 달 후에 그들은 폭염 속의 전투에 투입될 운명이었지만 전혀 알지 못했다. 전쟁을 방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와 기대를 지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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