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육 한 접시에 국가를 생각하다[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20〉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9일 03시 00분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권용득 만화가
우리 집 가구주인 아내는 반신반의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 국민에게 지급하기로 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말이다. 그 돈이 정말 들어올까, 아내는 제 손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면서도 믿지 못했다. 이튿날 체크카드로 입금된 그 돈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아내는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우리 집 세 식구는 그 돈으로 일단 긴급하게 평양냉면부터 사먹기로 했다. 이따금 평양냉면 먹으러 갈 때마다 수육 반 접시만 곁들여 먹었는데, 이번에는 한 접시를 시켰다. 우리 집 형편에 이래도 되냐며 먼저 나온 수육 한 접시를 맛있게 먹는 동안에도 아내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국가가 우리 집 세 식구한테 그동안 수고했다고 맛있는 밥 한 끼 사주는 느낌이랄까. 갑자기 없던 애국심이 마구 샘솟고 이 한 목숨 나라를 위해 기꺼이 갖다 바치고 싶어질 만큼 ‘꽁돈’의 위력은 어마무시했다. 생산성도 평소보다 높아졌다. 지지부진하던 원고 진도가 쭉쭉 나가기 시작했고, 근사한 만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도 다시 생겼다. 나처럼 비생산적인 인간이 이 정도면 다른 직종 노동자들은 어떨까 싶었다.

기본소득, 사실 반신반의했는데 이참에 진지하게 논의해봤으면 좋겠다. 우리사회 어느 한쪽에서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그 돈으로 베짱이처럼 가만히 놀고먹는 인구가 많아질 테고, 그럼 나라가 파산한다며 기본소득 도입을 극구 반대한다. 과연 그럴까? 그 기본소득이 비정규직 노동자든 정규직 노동자든 비인간적인 대접을 굳이 견딜 필요 없게 만든다면? 부당하게 해고당하기 전에 먼저 그만두게 만든다면? 월세를 마련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던 누군가를 그 절망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다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종잣돈이 될 수 있다면?

물론 기본소득을 핑계로 건물주는 세입자로부터 월세를 올려 받거나 시장의 물가가 껑충 뛰어오를 수도 있다. 비정규직이 당연해지면서 많은 노동자가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럼 말짱 도루묵이다. 다만 그와 같은 부작용을 잘 통제한다면, 기본소득은 우리가 갹출한 돈으로 우리 스스로를 구제하는 안전망을 하나 더 만드는 게 아닐까.

마크 트웨인이 그랬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결 중 하나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힘내서 싸우는 것이라고. 말하자면 기본소득이 사람들로 하여금 힘내서 싸우도록 부추길 수 있다면, 자립의 욕망을 부추길 수 있다면 반대할 까닭이 없다. 단, 이왕이면 가구주 말고 개인별로 주자. 가구주랑 사이 안 좋은 가구원은 돈 때문에 갑자기 화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얼마나 곤란하겠나. 이를테면 우리 집 가구주인 아내와 한바탕 크게 싸웠는데 평양냉면 먹고 싶으면 나더러 대체 어쩌란 말인가. 다시 말해 화해나 용서 따위 없이 만날 싸우더라도 생각이 다른 저마다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권용득 만화가
#긴급재난지원금#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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