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과 악인[이은화의 미술시간]〈112〉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1일 03시 00분


카라바조 ‘십자가에 못 박히는 성 베드로’, 1600∼1601년.
카라바조 ‘십자가에 못 박히는 성 베드로’, 1600∼1601년.
선과 악은 정확히 구분되는 것일까? 성서에는 수많은 선인과 악인이 등장한다. 기독교 박해와 폭군의 아이콘인 네로 황제도 악인의 대명사다. 그가 지배하던 로마에서 순교한 성 베드로는 예수처럼 살다 간 착한 성인의 상징적 인물이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는 베드로의 순교 장면을 화폭에 생생하게 담았다. 화가는 초대 교황이었던 그를 위대한 성자의 모습이 아니라 벌거벗고 고통 받는 노쇠한 인간으로 그렸다. 그림 속 베드로는 거의 알몸으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고 있다. 감히 스승과 같은 방식으로 죽을 수 없어 거꾸로 못 박히겠다고 자청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보려는 듯 머리를 치켜들고 온몸을 뒤틀어 일어나 보려 하지만 고통만 더할 뿐 꼼짝할 수가 없다. 깊게 파인 주름진 얼굴은 고통과 아픔으로 가득 차 있고, 먼 곳을 응시하는 슬픈 눈빛은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듯하다. 화면 가운데 아래쪽에 놓인 큰 돌덩이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을 나타내는 것으로 베드로를 상징한다.

표정과 눈빛이 자세히 묘사된 베드로와 달리 세 명의 사형집행자는 얼굴을 가리거나 알아볼 수 없게 익명으로 처리됐다. 그런데 악인의 역할을 맡은 이들은 로마 병사가 아니라 막일을 하는 평범한 인부들이다. 더러운 발과 노동으로 단련된 근육은 이들 삶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 명은 줄을 힘겹게 끌어당기고 다른 한 명은 온 힘을 다해 무거운 십자가를 들어올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몸을 구부려 등으로 받쳐주고 있다. 이들은 무고한 백발노인의 고통에 동정심을 보일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그저 오늘 해치워야 할 노동에 열중할 뿐이다. 카라바조는 그 옛날 로마의 형장에 우리를 데려다 놓고 묻고 있는 듯하다. 당신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고통 받는 착한 성자에 가까운가? 평범한 얼굴로 악을 행하는 인부에 가까운가? 자신의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하는 네로에 가까운가? 아니면 그저 구경꾼일 뿐인가?
 
이은화 미술평론가
#카라바조#십자가에 못 박히는 성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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