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원격의료에 대해 드라이브를 걸자, 대한의사협회가 ‘전화상담 처방 전면 중단’ 권고문을 발표했다. 원격의료 실행을 두고 의정 간 갈등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의협은 15일 발표한 성명서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현재 진행형 국가 재난을 악용한 것”이라며 “13만 의사가 결사항전으로 막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코로나19를 통해 원격진료의 장점을 부각해 의료 산업화 차원에서 계속 밀어붙이는 분위기다.
정부가 원격진료에 적극적인 건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환자들의 만족도가 컸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성모병원이 환자 약 9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진료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가 만족을 표시했다. 또 서울대병원이 운영한 문경 생활치료센터 입소 환자 1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화상담 만족도가 5점 만점에 4.6점이 나왔다. 은평성모병원의 경우 내원에 걸리는 시간이나 병원 대기시간 없이 진료를 받고 처방전까지 받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았다. 더구나 환자로선 자신의 상황에 따라 대면진료를 받을지 원격진료를 받을지 진료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하지만 은평성모병원 조사에서 의료진의 만족도는 14.2%에 불과했다. 대면진료는 청진과 촉진을 하면서 환자의 안색과 걸음걸이를 살필 수 있다. 하지만 전화 상담은 그렇게 하지 못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편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 청와대에 이어 국무총리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이 일제히 원격의료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하지만 원격진료는 어느 일방이 시행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의료진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다. 자칫 의사가 약을 처방하지도 않았는데 약을 먼저 팔겠다고 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그런데도 최근 정부가 의협 등 관련 단체에 사전에 충분한 협조를 구한 흔적은 없다.
원격진료에서 의사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건 오진 가능성이다. 오진으로 인한 의료사고는 결국 의사들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일부에선 원격진료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피해를 보험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공제보험을 만들자는 대안을 내놓기도 한다. 또 수술 전 부작용을 설명하는 것처럼 환자에게 원격의료 시 생길 수 있는 장단점을 모두 설명하게 해 책임을 경감시켜 주는 방법도 거론되고 있다.
대형병원의 원격진료는 환자 쏠림 현상을 더욱 가중시킨다는 것도 개원 의사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환자가 줄어 고사 직전에 처한 의원들은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가장 적극적으로 전화 상담에 응한 곳은 대형병원들이었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올 2월 24일부터 5월 10일까지 총 26만2121건의 전화 상담 중 절반 이상인 15만1126건을 병원급 이상이 처리했다. 이런 이유로 원격진료가 실시될 경우 동네병원에서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 심화가 우려된다. 정부가 의료전달 체계를 개편하면서 대형병원은 중증질환자를 주로 진료하도록 대안을 내놓기는 했다. 하지만 원격진료가 대형병원의 새로운 환자 쏠림 현상을 낳지 않도록 보다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원격진료를 통한 수가도 어느 정도 보장해줘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시행한 원격진료의 경우 기존 초진 재진 수가에 30% 정도 추가 지원을 받았다. 그런데 원격진료를 통해 의사들은 감염 우려를 최소화했지만, 약사는 그렇지 못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미국이나 일본, 중국처럼 의사가 전화 처방전을 받으면 집까지 약이 배달될 수 있도록 약사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원격진료가 제대로 실행되려면 의정 간의 신뢰를 쌓는 일이 중요하다.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될 당시 의료계가 앞장서 내놓은 대책들이 큰 효과를 봤고, ‘K방역’이 세계의 모범이 됐다. 특히 의협은 올 1월부터 중국 입국자 금지 필요성을 주장해 정부 정책에 변화를 줬고, 생활치료센터 아이디어도 제공했다. 원격의료는 K방역의 주역인 이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함께 참여하는 장을 만드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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