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긴급재난지원금 기부 특별법, 인터넷은행법 등 굵직한 법안들이 줄줄이 의결된 이날 회의에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집시법)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개정안엔 국회의사당과 국무총리 공관, 법원 주변 집회·시위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2018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집시법은 올해 1월 1일부터 효력이 상실돼 법의 공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날 법사위에선 청사와 공관 100m 이내에선 집회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두고 이견이 나왔다.
먼저 포문을 연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100m 이내’라는 기준이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이해하고 반영한 개정안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같은 당 박주민 의원은 “헌법불합치 판정의 취지를 충분히 담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가세했다.
100m 내 집회금지 규정이 집시법에 반영된 것은 1989년 3월부터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투척 경기에서 세계기록을 감안한 것”이라며 100m 거리를 둬야 하는 근거를 제시하며 방어 논리를 폈다. 급기야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수차례 지적받은 내용이고 충분한 심사를 거쳤다”고 읍소했지만 두 의원의 반대에 집시법은 결국 법사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따라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6개월간 이어진 집시법 공백도 다시 연장됐다.
집시법 개정안의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는 행안위다. 행안위 소속이 아닌 두 의원이 집시법 개정안 통과에 제동을 걸 수 있었던 것은 법사위가 가진 ‘체계·자구심사권’ 덕분이다.
각 상임위가 심사를 마친 법안에 대해 법사위가 위헌인지, 다른 법률과 상충하는지를 검토하도록 하는 체계·자구심사권에 대해 민주당은 총선 전부터 “야당의 발목잡기를 막아야 한다”며 폐지를 주장해왔다. 박주민 의원 역시 올 3월 이 권한 폐지 방안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체계·자구심사권 폐지에 앞장서면서도 정작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 법안에 제동을 거는 데 이 권한을 십분 활용한 셈이다.
국회 개원 때마다 여당은 체계·자구심사권 폐지를 주장해왔다. 지금은 ‘야당 탄압’이라며 체계·자구심사권 폐지를 반대하는 미래통합당도 여당이던 18, 19대 땐 법사위 권한을 제한하는 법안을 수차례 발의했다. 반면 야당은 “입법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이해충돌을 막기 위한 숙의의 과정”이라며 체계·자구심사권 폐지를 반대해왔다.
이재정 박주민 의원이 한 달간 계류시킨 집시법 개정안은 결국 20대 국회 마지막 법사위가 열린 20일이 돼서야 가까스로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두 의원이 지난달 법사위에서 행사한 체계·자구심사권한은 ‘숙의의 과정’이었는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발목잡기였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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