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정치 외교안보 경제 전반에 이르는 패권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 백악관은 21일(현지 시간) 공개한 의회 보고서에서 ‘중국은 생명과 자유 등에 대한 미국의 기본 신념을 흔드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향후 중국에 대해 협력보다는 공개적 압박과 사실상의 봉쇄 등 ‘경쟁적 접근’을 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코로나19에 대한 책임론과 경제 전쟁을 넘어 장기적인 신(新)냉전을 선언한 셈이다.
세계 1, 2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노골적인 무역분쟁을 벌여왔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후에는 책임 소재를 놓고 미국이 중국에 대해 “악랄한 독재정권”이라 비난하고 중국은 미국 대통령에게 “완전히 미쳤다”며 정면으로 충돌했다. 최근엔 중국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겠다고 하자 미국이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히는 등 전장이 확대되고 있다. 11월 미국 대선까지 트럼프 정부의 대중 압박과 중국의 강경 대응 양상은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전염병 확산과 그로 인한 경제난을 극복하기도 힘겨운 상황에서 미중 대충돌이라는 도전까지 맞게 됐다.
미국은 한국의 혈맹이자 안보의 보루다. 반면 경제 분야에서는 중국의 비중이 더 크다. 한국은 그동안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으나 점점 양자택일의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빼고 안보상 믿을 수 있는 나라들끼리 글로벌 공급망을 새로 짜자는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들고 나와 한국의 참여를 종용한다. 중국 화웨이에 연간 10조 원 이상의 반도체를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에도 공급 중단 압력이 가해지는 상황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기대는 안미경중(安美經中) 구조를 가진 한국에는 크나큰 시련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경제에 타격을 입었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미중 신냉전 시대에 제대로 대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글로벌 외교안보 경제에 대한 전략적 밑그림 없이 남북 간 교류협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에만 관심을 쏟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외교부는 지난해 미중 갈등 대응을 위해 외교전략조정회의를 출범시켰지만 올해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대중(對中) 경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미국의 EPN 압박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시 주석의 방한이 추가 긴장요소로 작용하지는 않을지, 미중 대격돌 시대의 외교안보 경제 전략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