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매물로 내놓은 사업을 프라이빗에쿼티(PE) 펀드가 인수하고, 몇 년 만에 기업 가치를 높여서 되파는 경우가 종종 보도된다. PE펀드는 대기업과 어떻게 다르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PE펀드는 투자하는 기업의 미래 가치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고려한다. 필자는 회계법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증권사, 자산운용사, 그리고 지금의 PE펀드까지 오면서 수많은 기업의 사업계획서를 봐왔다. 회사가 미래에 어떤 성과를 내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서가 바로 사업계획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기업이 인수합병(M&A)을 하는 이유는 이와는 다를 수 있다. 2014년 진행된 한화그룹과 삼성그룹 간의 M&A가 좋은 사례다. 당시 삼성그룹은 그룹 내 핵심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이유가 있었고, 한화그룹은 기존 비즈니스와 시너지가 나는 사업을 인수한다는 명분이 있어 삼성의 화학과 방위산업 관련 4개 계열사를 약 2조 원에 한화로 넘기는 거래가 성사됐다. 그로부터 5년 후, 이 4개 회사는 2014년 대비 영업이익이 약 8배나 상승하면서 한화그룹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됐다. 이 결과를 보고, 미래 가치를 바탕으로 과감한 승부를 건 한화그룹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간단히 말할 일이 아니다. 삼성은 매각대금을 받아 반도체와 같은 핵심 산업에 투자하면서 경쟁자들과의 ‘초격차(超格差)’를 실현하며 글로벌 시장의 선두에 섰다. 즉, 삼성그룹도 계열사들의 미래 가치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선택과 집중’이 적절한 전략이라고 판단해서 매각을 단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한화그룹뿐만 아니라 삼성그룹도 M&A의 승자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대기업은 단순히 미래 가치만이 아니라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M&A 결정을 내린다. 그룹 차원의 자원 배분, 경영진의 선호, 내부의 정치적 이슈, 정부의 규제 같은 요소들도 고려해야 한다. 가까운 예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금산분리 정책으로 인해 롯데그룹이 롯데손해보험과 롯데카드를 매각한 사례(2019년) 등이 있다. 이렇게 미래 가치에 대한 고려 외에 다른 이유로 대기업의 사업 매각이 진행되는 경우, PE펀드에는 좋은 기회가 된다.
사업을 인수하고 나서 PE펀드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우수한 경영진을 선임하는 것이다. 물론 무조건 경영진을 교체하는 건 아니다. 기존 경영진이 지속적인 경영활동을 원하는 경우 회사에 필요한 역량을 보충해주는 전문가를 선임해서 기존 경영진을 보조할 수도 있다. 대기업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전문 인력을 중소기업 경영진으로 선임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가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최근 삼성전자의 생산설비 전문 인력들이 마스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을 찾아가 공정을 진단하고 개선사항을 조언하자 생산량이 약 50% 상승했다고 한다. 중소기업도 강점이 많겠지만, 대기업에서 쌓아온 노하우가 중소기업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PE펀드는 ‘볼트온(Bolt-on)’ 전략도 쓴다. 기존 비즈니스와 시너지가 날 만한 기업을 계속 인수해서 전체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다. 국내 유명 PE펀드인 한앤컴퍼니는 2013년 약 1000억 원에 웅진식품을 인수했다. 그리고 웅진식품을 통해 대영식품, 동부팜가야 등을 추가로 인수했고, 이에 따라 제품 포트폴리오가 기존의 ‘아침햇살’ ‘초록매실’에서 ‘가야토마토농장’ 등의 음료와 제과 부문까지 확대됐다. 뿐만 아니라 물류와 행정 측면에서의 업무 효율성이 개선돼 기업 가치가 크게 증가했다. 한앤컴퍼니는 5년여 만에 웅진식품을 약 2600억 원이라는 높은 금액에 대만 식품기업 퉁이(統一)에 매각할 수 있었다.
PE펀드는 과감한 M&A와 인수기업 간의 시너지 창출을 통해 기업 가치 상승을 꾀한다. 전문가를 임직원으로 영입하고, 네트워크를 이용해 해외 진출을 돕기도 한다. 또 인센티브 제도 등을 통해 회사와 내부 임직원들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킨다. 임직원들이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기업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시대다. 경제위기가 잘 해결되고, 많은 기업이 투자를 통해 더 높은 기업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 원고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국어판 2020년 5, 6월호에 실린 글 ‘대기업과 PE펀드: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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