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다. 나라의 중기 재정운용계획을 짜는 회의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전시 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재정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면서 “더 과감한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지출 구조조정이나 세입 확충의 구체적인 방안은 논의되지 않았다.
올 들어 코로나19 사태로 세입은 줄고 세출은 증가해 나랏빚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다음 달 발표할 3차 추경이 30조 원이라면 올해 국가채무는 850조 원이 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40% 안팎이었던 국가채무가 45% 수준으로 치솟는다. 증가 규모와 속도 면에서 역대 최고다.
미증유의 경제위기에서 국민들의 일자리와 삶을 지키고 경제를 반등시키려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적극적인 재정확대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달러와 유로화를 찍어내는 기축 통화국들과 한국은 다르다. 재정적자가 커지면 국가 신용등급이 낮아지고 외국인투자가들이 빠져나가 환율이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치명적이다.
바람직한 방향은 재정을 풀어 경제성장률을 높임으로써 재정적자와 채무비율이 줄어들도록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재정을 꼭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물 뿌리기식 현금 살포는 지출 대비 효과가 작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가 얼마나 장기화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은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경기 침체 징후를 보인 데다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로 복지·보건 예산이 급증하고 있다. 자칫 경기는 못 살리고 재정만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지면 큰일이다.
한국이 지금 재정을 동원할 수 있는 것도 그동안 재정 건전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재정 확대가 불가피하더라도 최소한의 원칙은 있어야 한다. 독일 프랑스 등은 국가 채무나 지출, 세입 등의 원칙을 규정한 ‘재정준칙’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한국은 국가재정법에 막연히 ‘건전재정 유지 노력’을 규정했을 뿐 구체적 기준이 없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제도적 기준을 만들어 절도 있는 재정 운용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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