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은 10일. 문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난 극복을 위한 청사진으로 ‘한국판 뉴딜’ 구상을 내놨다. 노후 산업단지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디지털화해 일자리를 창출해 내겠다는 것. 문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자 사회를 본 윤도한 대통령국민소통수석은 “연설 들은 대로 다 쉽게 이해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첫 번째 질문자는 문 대통령에게 “한국판 뉴딜이 재정이 투입되는 순간만 일자리를 늘려주는 사업이 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디지털 인프라 구축으로 자동화가 가속화되면 결국 일자리가 줄어들 텐데 어떻게 ‘한국판 뉴딜’이 일자리 대책이 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문 대통령은 “공감이 가는 걱정”이라면서도 “(디지털화) 작업에는 많은 수작업, 인력이 직접 해야 하는 작업이 생겨나게 된다”고 했다. 디지털 인프라 구축이 마무리되고 난 뒤, 더욱 줄어들 일자리에 대한 대책이 뭐냐는 질문엔 답을 내놓지 못한 셈이다.
비슷한 질문은 22일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 회의에서도 이어졌다. 김성주 국난극복위 대변인은 회의를 마친 뒤 “(회의에서) 디지털 뉴딜은 자칫하면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방향이 된다. 어떻게 일자리를 유지하며 디지털 경제로 갈지 심도 있는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했다. 디지털 뉴딜로 인해 가속화될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해법은 청와대도 여당도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
청와대와 여당이 생각하는 가장 유력한 대안은 복지 확대다. 문 대통령도 “(실직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을 때까지 그 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큰 과제”라며 전 국민 고용보험을 내걸었다. 그러나 고용보험이 확대되더라도 최대 9개월간 지급되는 실업급여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이참에 전 국민에게 평생토록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본소득’ 논의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민주당과 합당한 더불어시민당이 4·15총선에서 내걸었다 철회한 매달 60만 원의 기본소득 지급 공약을 이행하려면 연간 360조 원이 필요하다. 지난해 국가채무(약 729조 원)의 절반 수준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다. 증세 없이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증세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아직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 청와대와 여당은 복지 재원에 대한 물음에 아직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재정을 풀어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려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민주당의 논리는 박근혜 정부 당시 민주당이 비판했던 ‘증세 없는 복지’와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주장이다.
여당이 히든카드로 꼽는 다른 대안은 남북 경제협력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디지털 뉴딜이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투자라면 진짜 경제 돌파구는 남북 관계에 있다”며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고서라도 지금이라도 북한과의 독자적 경제협력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남북 철도 연결 등 북한 SOC 사업에 참여해 디지털화로 일자리를 잃는 실직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을 바라보고 있는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의 문을 열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박정희 대통령에겐 경부고속도로, 김대중 대통령은 초고속 인터넷이 있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지율이 아니라 재임 기간 깔아놓은 인프라가 좌우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한국판 뉴딜을 임기가 2년도 채 남지 않는 문 대통령의 ‘레거시(유산)’로 남기려는 구상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풀지 못한 숙제의 무게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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