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박(한국명 박정현·46)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가 미국 워싱턴에서 갖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미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정보국(DNI)에서 북한 담당 선임 분석관으로 일하며 쌓은 탄탄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발언과 자료들은 큰 주목을 받아왔다. 그의 정보기관 근무 기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도자 훈련 및 취임, 조직 장악 과정과 맞물려 있기도 했다. 사실상 ‘김정은 분석가’로 살아온 그의 무게감이 적지 않은 이유다.
박 석좌는 지난달 ‘비커밍 김정은’이란 첫 저서를 출간했다. 김 위원장의 신변이상설로 전 세계가 한 바탕 들썩인 터라 그가 보는 김 위원장의 속내와 북한의 미래가 어떨지 궁금했다. 최근 동아일보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그는 “김 위원장은 (스스로의 입지가) 약하다고 느낄 때 더 공격적으로 행동한다. 그를 절대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며 “북한이 올해 더 많은 미사일 발사 같은 도발과 무력시위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 이후 북한 내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북한을 다루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다고 느꼈나.
“북한은 편집증적인 정권 안에 여러 겹의 보안장치가 작동하는데다 정보들이 여기저기 서로 분절돼 있다. 교차 검증을 할 수 있는 정보들이 거의 없다. 그 핵심에 있는 김정은의 이너서클은 그 자체로 매우 소규모이기도 하다. 산재한 퍼즐들을 맞춰가며 정권 내부를 뚫고 들어가는 것은 지난한 작업이다. 심지어 모두가 같은 게임판에 들어와 있는 것도 아니다.”
―CIA에서 북한에 대한 당신의 분석은 늘 맞았다고 자부하나?
“아니, 절대 그렇지 않다. CIA에서 북한을 다룬다는 것은 참 마음이 불편한 일이었다. 다만 우리 임무는 점쟁이처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정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대통령과 정책결정자들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 및 답변을 준비하는 일이다. 이들이 놀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저서에서 CIA 베테랑 분석관으로 유명한 리처드 휴어의 1999년작 ‘정보분석심리학’을 성경 같은 지침서라고 소개했다. 왜 그런가.
“그 책은 CIA 분석관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처럼 주어지는 책이다. 실제 스파이 활동을 했던 저자는 우리가 가진 선입견이나 편견에 의해 사안을 보게 되는 함정을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의 뇌 작동은 분석과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북한처럼 어려운 분석 대상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실제 그 함정에 빠졌던 적이 있나.
“왜 없겠나.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게 2018년 김정은 신년사였다. 김정은이 올림픽에도 갈 수 있다고 했을 때 나는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당시 언론이 ‘이제 북한 지도자가 달라졌다’는 식의 긍정적인 전망들을 쏟아냈지만 나는 회의적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맞았지만….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 내가 변화를 보지 못하고 과거(의 틀)에 갇혀 있는 아닐까 등을 늘 고민하게 된다. 새로운 도전을 준다는 점에서는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두뇌 훈련으로 생각한다.”
―김 위원장의 잠행 기간에 뇌사설, 위독설 같은 가짜뉴스들이 쏟아지고 부풀려졌다. 북한에도 휴대전화와 USB가 들어가고 북중 접경 지역 교류 활발한데도 이런 문제는 왜 반복되는 것인가.
“많은 이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각자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려 했던 반면 정보는 부재하다 보니 이들이 정보를 만들어내는 상황이 돼버렸다. 김정은이 4월15일 태양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나 뭔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탓도 있다. CNN과 MSNBC 방송이 이를 보도한 것, 미국 당국자가 인용된 것은 보도의 신빙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 당국자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관련 정보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이번 일은 결국 우리가 북한에 대해 얼마나 모르는지를 깨우쳐주는 사건이었다.”
인터뷰 내용이 북한의 후계 구도로 흘러가자 박 석좌의 표정이 흥미진진해졌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부인 리설주 등에 대한 여성 분석관으로서의 관점과 접근 방식은 다소 달라 보였다. 그는 “내가 책에서도 가장 관심을 갖고 집필했던 장(chapter)”이라며 “특히 리설주는 김정은에 대해 정말로 많은 것을 드러내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후계구도를 어떻게 보나.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 당시 일각에서는 김여정을 후계자로 지목했는데.
“필요하다면 김여정이 후계 자리를 이어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오랜 유교 문화와 관료주의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한계가 있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백두혈통이 훨씬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김정은 본인이 생각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어린 자녀 중 한 명을 후계자로 앉히고 김여정이 후원자로 뒤에서 돕는 방식을 선호할 것으로 본다.”
―리설주에 대해 당신은 책에서 ‘김정은 권력의 전략적 요소’라고 분석했다. 향후 그의 역할은 커질 수 있을까.
“책의 모든 챕터 가운데 이설주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제일 마음에 든다. 가장 관심을 갖고 기술한 부분이다. 리설주는 김정은의 악세사리다. 우아하고 매력적이며 훌륭한 패션감각을 보여주는, 재클린 케네디처럼 만들어진 이미지의 악세사리. 김정은은 그런 리설주가 북한을 이끌 다음 후계자의 어머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이를 통해 후계 구도를 확실히 하고 북한 지도주의 가족주의와 연속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동시에 김정은을 독재자가 아니라 자상한 남편과 아버지로 형상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설주는 젊은 세대에게 ‘미래’의 상징이기도 하다.”
―북한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북중 교류 차단과 제재 유지로 내부적 난관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김정은은 1월부터 이미 올해가 어려운 해가 될 것으로 보고 준비에 들어가 있었다. 미국과의 대치, 적대적 관계 장기화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봤다. 과거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신년사와 달리 이번에는 진지했다. 코로나19로 북중 국경이 봉쇄되면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아랍의 봄’ 같은 봉기는 없을 것이다. 코로나19가 김정은의 행동 패턴을 크게 바꿔놓지도 않을 것으로 본다. 김정은은 올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더 많은 미사일 실험을 하고, 군사적 무력시위에도 더 많이 나설 것이다. 그는 약하다고 느낄 때 더 공격적으로 행동한다. 예를 들어 3월에 모두가 코로나바이러스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는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미사일 실험을 했다. 방역이나 경제 보호보다 힘을 과시하는 게 그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 북-미 협상 전망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군축 협상으로 갈 수밖에 없나.
“북한은 ‘미국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자신들도 협상에 다시 임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미국 대선을 앞둔 시기에 김정은이 협상에 나설 이유도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도, 군축협상에 나서는 것도 답은 아니다. 이는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이자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전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도 나쁜 교훈이 된다. 결국 우리는 외교적 노력을 지속하는 수밖에 없다. 더 나쁜 다른 선택지들 중 그나마 이 옵션이 제일 낫다.”
―당신은 책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이중 잣대로 인해 그가 동시에 과대,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대한 당신의 판단은 현재 어느 쪽인가.
“북한이 핵무기로 미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그의 능력은 과대평가돼 있다. 반면 김정은의 역량이나 의도는 과소평가돼 있다고 본다. 북한이 전략적인 핵실험을 멈췄다고 해서 위협이 줄어들었다고 보는 것은 상황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을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묘사하는 등의 북한 ‘개그 산업(humor industry)’은 여전히 미국에 존재한다. 김정은을 만화 같은 캐릭터로 묘사할 때는 그만큼 그를 과소평가하게 된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안고 있다.”
―최근 신임 국가정보국장(DNI)에 임명된 존 랫클리프의 경험 부족과 자질 논란이 불거졌다. 미국 정보기관의 역량을 어떻게 평가하나.
“DNI는 17개 정보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다뤄야 하는 중요한 자리다. 수십 년간 정보기관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맡아온 이 DNI 자리가 최근에는 계속 대행체제로 유지돼 왔다. 신임 국가정보국장도 정보 분야 경험은 거의 없는 인사다. 현 행정부에서 중국과의 협력은 불가능하고, 북한인권 특사 자리는 공석이며 북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다자 회의도 없다. 이럴 문제가 있을수록 동맹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마지막 질문과 답변이 끝났을 때 한 소녀가 화상 인터뷰 카메라에 얼굴을 장난스레 들이밀었다. 그의 딸이었다. 워킹맘인 박 석좌는 1년간 두 자녀가 잠든 후 자정이 넘어서야 집필에 매달려 ‘비커밍 김정은’을 출간했다고 했다. 그는 “전 세계 많은 여성들이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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