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초 이달로 예정됐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9월경으로 연기하고 한국 호주 러시아 인도도 초청하고 싶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며 “미국과 협의해 나가겠다”고만 했다.
한국이 ‘최고의 선진국 클럽’이라는 G7 정상회의에 초대받은 것은 우리의 글로벌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냥 반가워할 일만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은 기존 G7을 뛰어넘어 새로운 ‘G11’을 만들고 싶다는 기대가 담겨 있지만 아직은 즉석 제안 수준으로 들린다.
더욱이 미중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는 와중에 날아든 초청장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G7 회의에 다른 나라를 추가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대항전선 구축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새롭게 초청하겠다는 호주와 인도는 일본과 함께 미국의 중국 견제전략인 인도태평양전략의 핵심 국가다. 여기에 한국이 합류하는 모양새가 된다면 한중관계 악화는 불가피하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외교전략조정 통합분과회의를 열어 미중 갈등 격화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당장 이튿날 경북 성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에서 이뤄진 노후장비 교체를 두고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중국의 사드 보복 사태를 떠올리게 했다.
그간 미중 무역전쟁을 시작으로 코로나 책임론, 홍콩 국가보안법 갈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대결이 가팔라질수록 회색지대의 공간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바라는 북핵 해결도 미중 대결 속에선 더욱 무망해질 뿐이다. 안보 동맹국과 최대 교역국 사이에서 한국 외교가 마냥 침묵 속에 저울질만 하면서 갈등이 사그라지기를 바랄 수만은 없다. 섣부른 선택도 안 되지만 강요된 선택도 안 된다. 당장은 미중 신냉전이 한국에 끼칠 리스크 관리에 외교력을 모으면서 생존과 국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준비해야 한다. 실기(失期)는 더더욱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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