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용돈 1만 원을 한 주 만에 다 써버린 초등생 아이가 또 돈을 달라고 한다. 친구들과 수행과제를 해야 하는데 빈손으로 나가기가 좀 그런 모양이다. 엄마는 돈을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나의 대답은, 돈으로 아이를 너무 치사하게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묻지도 않고 달라는 대로 주는 것도 안 되지만, 돈을 잘못 쓴 것은 네 책임이니 더 이상 줄 수 없다는 것도 좋지 않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꼭 필요한 것이라면, 그 전에 돈을 잘못 썼어도 줘야 한다. 돈을 잘못 쓴 행동에 대해서 반성할 것은 무엇인지 대화를 좀 나누긴 해야 한다. 아이에게 “네가 쓴 것 중에 가장 후회되는 것이 있니”라고 물어보고 이만저만한 것이 후회가 된다고 하면 “그런 걸 좀 줄여봐야겠구나” 한 후 “그런데 오늘 얼마가 필요하니”라고 묻는다.
아이가 얼마라고 얘기하면, 추가로 돈을 주기 전에 대가를 조금 치르게 하는 것이 좋다. “이 돈은 네가 추가로 받는 것인데, 그 대가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물어본다. 아이가 뭔가 이야기를 하면 그중에 골라도 되고, 부모가 아이에게 작은 부탁을 하나 하는 것도 괜찮다. 예를 들어 다음 주 엄마가 저녁 모임에 나가야 하는데 그날 동생의 학원 숙제를 챙겨 준다거나 하는 식이다. 아이가 약속하면 고맙다고 말하고 돈을 준다.
진료를 하다 보면 아이들은 용돈에 대한 불만이 정말 많다. 어른처럼 똑같이 돈이 필요하고 돈을 갖고 싶어 한다. 부모에게 이렇게 말하면 “말하면 다 해주는데 무슨 돈이 필요해요”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에게 일일이 말하지 못하는 ‘돈 쓸 일’이 생각보다 많다.
용돈을 못 받는 아이는 또래관계가 힘들다고도 한다. 아이의 심정은 지갑에 땡전 한 푼 없는 회사원과 같다. 회사에서 밥도 나오고, 커피도 있고, 교통카드도 있지만 용돈이 한 푼도 없으면 초라해지고 쭈뼛거리게 된다. 또래관계를 위해서도, 경제교육을 위해서도, 아이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의미에서도 되도록 초등학교 때부터 용돈을 꼭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초등생은 아직 용돈 관리를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하루에 얼마씩 계산해서 주급으로 주는 것이 좋다. 그러다가 아이가 관리를 잘한다고 생각되면 월급으로 준다. 그런데 이 용돈에는 매일 먹어야 하는 간식, 꼭 필요한 학용품은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은 부모가 사줘야 한다. 용돈은 아이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만 쓰이도록 한다. 아이에게 “네가 용돈을 모아서 그것으로 그동안 사고 싶었던 것을 사든지, 문구점에서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사든지 아니면 친구들과 먹을 것을 같이 사먹든지 네가 알아서 쓰면 돼”라고 정리해준다.
용돈과 관련된 아이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용돈을 한꺼번에 다 써버리거나 부모가 원하지 않는 나쁜 곳에 썼다며 부모들이 용돈을 회수해 버리는 것이다. 아이가 용돈을 잘 쓰려면 잘못 써보기도 해야 한다. 잘못 써봐야 ‘이렇게 쓰면 안 되는구나’ 배운다. 아이가 용돈을 잘못 쓸까 봐 걱정되면 용돈을 주면서 “나쁜 데 쓰지 말아라” 말해둔다. 이때 친구한테 돈을 나눠주지 말 것, 불량식품을 사먹지 말 것 등 부모가 생각하는 ‘나쁜 데’를 세 가지 정도만 구체적으로 말해둔다. 나머지는 아이 마음대로 써보게 한다. 잘못 써도 용돈은 꼭 다시 줘야 한다.
내가 진료하는 환자 중 한 남자는 아내와 사이가 나빠지거나 화나는 일만 있으면 생활비를 제때 넣어주지 않았다. 돈으로 벌을 주겠다는 의도다. 아내는 매달 일정하게 들어가는 돈이 있으니 남편에게 때때마다 ‘세금 내야 해’ 등의 문자를 보내야 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엄청난 굴욕감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적어도 경제적으로 당신의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겠다’ 생각하게 됐다. 남편이 자꾸 돈을 가지고 힘을 행사하니 저항하고 싶어진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문제 행동을 했거나 시험 성적이 떨어졌거나 게임시간을 어겼을 때 벌을 주는 수단으로 ‘용돈’을 들먹거리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생각하기 때문에 돈으로 아이를 통제하려고 들면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고 치사하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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