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명이 모이는 왁자지껄한 모임도 좋지만 대체로 소수의 만남을 선호하는 편이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무래도 깊이 있는 대화보다는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연예인 가십, 밥벌이의 고단함이 이야기의 주를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취향이나 성향보다는 삶의 특정 단계에서의 인연을 계기로 형성된 관계가 보통이다 보니, 확률적으로 다수에게 공통의 관심사가 될 만한 것이 사실 딱 그 정도인 것이다. 더불어 그 맥락은 대개 부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이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수월한 까닭이다. 가령 남편이나 상사에 대한 감사나 칭찬보다는 불평이나 험담이 더 흥미로운 대화 소재로 인정받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시끌벅적한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몇 시간을 한참 떠들어 놓고도 ‘그래서 오늘 무슨 얘기를 했더라’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사실 그 정도면 다행이고 가끔은 ‘왜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말했을까’ 후회할 때도 있다. 겉도는 대화, 교감 없는 만남 끝에 남는 것은 늘 허무함 아니면 ‘이불킥’이지만, 사회생활이란 으레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이는 만나는 인원수에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어서, 더러는 인원이 적더라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역의 경우(인원이 많더라도 양질의 대화를 경험하는 경우)는 좀처럼 성립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다양한 주제가 있지만 주로 생업인 마케팅을 주제로 한 모임에 나간다. 마케터를 꿈꾸는 학생부터 나처럼 마케팅으로 밥벌이를 하는 직장인,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이 모여 브랜드와 일,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스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공들여 대화한다. 세 시간 남짓한 대화를 위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며 꼬박 한 달을 준비한다. 첫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마음이 들떴다. 생판 처음 보는, 애써 찾지 않으면 영영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깊이 있는 공감을 받았다. 모처럼 진짜 대화를 나눈 기분이었다.
개인의 특성을 태어난 연도로 구획화하는 세대 구분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요즘 이삼십 대인 밀레니얼 세대를 특징짓는 키워드 중 하나가 ‘개인주의’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와 동시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 ‘커뮤니티’ 산업이 활황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키워드 사이를 매개하는 것은 바로 ‘취향’이다. 독서, 영화, 러닝 등 취향에 기반한 커뮤니티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생겨나는데 심지어는 대부분이 유료다. ‘나’를 중시하는 ‘요즘 것들’은, 사회생활이라는 굴레로 강요되는 겉도는 만남 대신 나의 취향과 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깊이 있는 만남을 선호한다.
‘당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줄 사람은 여행자’라는 말이 있다. 서로에게 잘 보일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들의 이러한 모습도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서로에게 잘 보일 필요 없이, 그 어떠한 속박이나 가식 없이, 교감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진짜 만남에 대한 갈증 말이다. 앞으로의 숱한 만남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귀한 여행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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