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의 한 법정. 형사재판 증인으로 출석한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A 교수에 대한 신문이 끝나자 판사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A 교수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진료하는 (중환자실의) 80대 이상 환자는 대부분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다. 이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 봐 두려워 2월부터는 누구와도 같이 식사하지 않고 있다. 점심도 저녁도 햇반과 컵라면으로 때울 때가 많다. 혹시 제가 무증상 감염이라도 되면 환자들이 사망할 수도 있어 극도로 주의하고 있다.”
A 교수는 자신이 재판부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던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는 증인으로 소환된 재판 날짜보다 한 달 이상 앞선 4월 23일, 출석하기 힘든 이유를 적어 재판부에 냈다. 고령의 중증환자를 진료하는 자신이 재판 출석을 위해 부산과 서울을 오가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걸리면 환자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어 걱정했다는 것이다.
A 교수의 말은 들은 판사는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이 정한 절차라 어쩔 수 없었다. 양해해 달라”고 했다. A 교수의 불출석을 허락해주지 않은 데 대한 미안함을 표시한 것이다. 자녀 입시비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A 교수는 1시간가량 신문을 받고 부산으로 돌아갔다.
A 교수의 법정 출석 닷새 뒤인 2일 오전. 같은 법원에서는 조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줘 대학 입시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이 재판에서 피고인인 최 대표는 “당 행사로 (국회에서) 기자회견이 있다”며 재판을 빨리 끝내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거절당했다. 또 최 대표 변호인은 “허가해 준다면 피고인(최 대표) 없이 진행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이 허용하지 않는 위법”이라며 역시 받아주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뒤 최 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재판 연기를 신청했었는데 안 받아들여졌다”고 했다. 늦게 도착한 당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기일 변경을 신청했는데도 재판부가 받아주지 않았다고 해서 피고인이 재판 도중에 먼저 법정을 떠나도 되는 정당한 사유가 생기는 건 아니다. 수많은 피고인 측이 기일 변경을 신청한다. 그리고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법정에 나가고 끝까지 피고인석을 지킨다. 거의 모든 피고인들은 최 대표와 같은 말을 해볼 생각조차 못 한다. 증인으로 소환된 A 교수도 “그럼에도 어쩔 수가 없어 (법정에) 나왔다”고 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헌법 11조 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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