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포스트 코로나’ 성큼… 도쿄-홋카이도-오사카 -나고야 ‘랜선 건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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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코로나 막는 사업 모델 속속 탄생… 온라인으로 숙박, 음주, 친교 즐겨
여관-가라오케는 사무실로 변신
정보기술 활용해 매장 밀집도 파악

투명 가림막이 설치된 일본 도쿄의 한 주점에서 시민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여파로 일본의 대부분 오프라인 음식점과 주점은 비말 감염을 막기 위해 투명 가림막을 세웠다. 아사히신문 제공
투명 가림막이 설치된 일본 도쿄의 한 주점에서 시민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여파로 일본의 대부분 오프라인 음식점과 주점은 비말 감염을 막기 위해 투명 가림막을 세웠다. 아사히신문 제공
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일본 와카야마현 나치카스우라정의 게스트하우스 ‘와이구마노(WhyKumano)’는 문을 연 지 채 1년도 안 된 올해 봄 위기를 맞았다. 일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예약자들이 잇따라 숙박을 취소했다. 4월 들어선 침대 16개가 모두 남을 정도로 예약이 뚝 끊겼다.

살려면 대책을 세워야 했다. 우시로 다카야(後呂孝哉) 사장은 예약자들이 여행을 희망하지만 코로나19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을 주목했다. 몸은 집에 있지만 마음은 와이구마노에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온라인 숙박’ 시스템을 만들었다.

‘투숙객들이 온라인 숙박을 한다고 해도 결국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는데 숙박료 1000엔(약 1만1400원)을 낼 사람이 있을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결과는 ‘대박’이었다. 우시로 사장은 코로나19가 종식된 뒤에도 온라인 숙박 사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지난달 25일 일본 전역에서 긴급사태 선언이 해제됐다. 와이구마노 게스트하우스의 온라인 숙박처럼 올해 상반기 코로나19를 극복하는 와중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하나둘 생겨났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할 채비에 나선 일본의 모습을 둘러봤다.

○ “몸은 집에, 마음은 여행지에”

일본 와카야마현 나치카스우라정에서 게스트하우스 ‘와이구마노’를 운영하는 우시로 다카야 사장이 화상으로 숙박시설을 안내하고 있다. 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와카야마현 나치카스우라정에서 게스트하우스 ‘와이구마노’를 운영하는 우시로 다카야 사장이 화상으로 숙박시설을 안내하고 있다. 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기자는 2일 와이구마노에서 온라인 숙박을 체험했다. 오후 8시 화상회의 서비스 줌(ZOOM)의 지정 회의실로 들어갔더니 온라인 숙박자 9명의 얼굴이 보였다. 우시로 사장과 직원 1명을 제외한 실제 숙박자는 7명이었다. 기자를 포함해 도쿄에서 3명, 홋카이도 2명, 오사카와 나고야에서 1명씩 접속했다.

“와이구마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먼저 숙소로 안내하겠습니다.”

우시로 사장은 밝게 인사하며 3층으로 향했다. 직원이 웹캠을 들고 투숙객의 눈이 돼 우시로 사장을 따라갔다. 캠 화면을 통해서라곤 해도 이곳저곳 둘러보니 실제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한 느낌이 들었다.

침실을 배정받은 뒤 투숙객들이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대학원생, 여행사 직원, 라디오 방송인, 게스트하우스 운영자 등 직업이 다양했다. 일부 투숙객은 대학 선후배 사이란 사실을 알고선 놀라기도 했다.

“자, 건배를 하겠습니다. 잔을 들고 카메라를 향해 주세요.” 우시로 사장의 건배 제안에 모두 웹캠 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술이 한잔 들어가자 분위기가 한층 편안해졌다.

우시로 사장은 인근 관광지 동영상을 줌을 통해 소개했다. 서일본 최고로 손꼽히는 가쓰우라 온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마노 고도(古道), 참치 회를 200엔에 살 수 있는 무인판매대…. 화면 속에서 “꼭 가보고 싶다”는 탄성이 터졌다.

우시로 사장은 4월 6일 온라인 숙박 사업을 시작했다. 하루 6명 내외 투숙객을 받는데 늘 만실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온라인 숙박을 한 사람은 300명을 넘었다. 온라인 숙박 비용은 실제 방문 시 받게 될 음료수를 포함해 1000엔으로, 오프라인 숙박 비용(3000엔)의 3분의 1 선이다. “무료 음료수는 오프라인에서 꼭 다시 만나자는 뜻”이라고 우시로 사장은 설명했다.

원래 취침 시간은 오후 10시로 정해져 있지만 실제 모임은 오후 11시까지 이어졌다. 대화가 끊기지 않을 만큼 즐거웠던 것이다. “반신반의하며 온라인 투숙을 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실제로 꼭 방문하고 싶다”는 소감이 이어졌다.

다음 날 오전 휴대전화에 우시로 사장이 보낸 메시지가 떴다. 현지의 일상을 담은 동영상이었다. 그 영상을 감상하면 체크아웃이 진행된다. 투숙객들은 페이스북 단체방에서 인연을 이어가기로 했다.

우시로 사장은 “수십 번 테스트하고 연구해 온라인 숙박 시스템을 만들었다. 만족도가 높아 4번이나 이용한 투숙객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온라인 숙박업체만 10여 곳에 이른다고 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그 수는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다.

온라인 주점도 생기고 있다. 도쿄의 주점인 ‘바 플라스틱 모델’은 500엔을 받고 온라인으로 주점 내 모습을 생중계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술은 각자 마련하지만 온라인 중계를 통해 주점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참가자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가능하다. 주점 측은 “하루 평균 20명 정도 온라인 주점에 참여한다. 그 덕분에 코로나 사태 때 가게 문을 닫았지만 폐업을 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에서도 변화가 엿보인다. 음식점들은 매출 감소를 무릅쓰고 테이블 수를 줄이고 있다. 테이블 중간에는 투명 칸막이를 세웠다. 대부분 편의점, 주민센터 등 접수창구에는 비말 감염을 막기 위해 투명한 비닐이 설치됐다.

○ 노래방·여관이 사무실로…공간의 재발견
‘3밀(밀집, 밀접, 밀폐) 걱정 없는 텔레워크(원격근무) 응원 상품.’ 도쿄 분쿄구의 여관 ‘호메이칸’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런 문구가 뜬다. 코로나19로 예약이 잇따라 취소되자 빈방을 업무용으로 내놓은 것이다. 요금은 4시간에 3300엔, 8시간에 4500엔이다. 1905년 목조로 지어진 전통 여관인 호메이칸은 유형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호메이칸 측은 “도쿄도가 3밀 회피를 주장하는 기간에는 계속 텔레워크 상품을 운영할 계획”이라며 “집에 아기가 있어서 재택근무를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일본 노래방 체인인 ‘가라오케노테쓰진’도 텔레워크 상품을 내놨다. 평일 개점 후 오후 8시까지 노래방을 개인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 객실에 인터넷과 전원 콘센트 등을 설치했다. 한 달 동안 무제한 사용 요금은 3980엔. 노래방은 대체로 역 가까이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전용 회의실을 빌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코로나19로 공간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셈이다.

○ 코로나19 막는 정보기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정보기술(IT) 업체들도 나섰다. 치료약이 개발되기 전까지 기술로 감염병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인공지능(AI) 개발업체인 AWL은 4월 말에 카메라로 방문객 수를 헤아려 혼잡 정도를 분석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슈퍼마켓이나 유통매장 입구에 카메라를 설치하면 단말기에 ‘혼잡’ ‘한산’ 등 결과가 뜬다. 카메라 1대당 비용은 6만5000엔, 월 이용료는 3000엔이다.

화상 인식을 통해 방문객의 마스크 착용과 알코올 소독제 구비 여부 등도 분석할 수 있다. 손 세정을 마치고 열이 없는 이들만 입점하도록 하는 기능도 개발 중이다.

방범 서비스업체인 어스아이즈도 지난달 중순 점포 내 영상을 통해 점원과 방문객의 밀집도를 분석하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소비자는 5분 간격으로 업데이트되는 수치를 집에서 컴퓨터로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사람 모습은 흐릿하게 처리했다. 밀집도가 정해진 기준을 넘으면 책임자에게 자동으로 연락이 간다. 기존 감시카메라에도 이 같은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전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새로운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이 계속해서 탄생하고 있다. 일본에서 최근 선보인 온라인 숙박과 주점, 위치정보 분석 기술 등은 향후 언택트(비대면) 시대를 이끌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기자는 온라인 숙박을 예약하면서 내심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경험한 뒤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온라인 숙박은 공간의 한계, 태풍 등 기상의 한계를 뛰어넘어 여행의 묘미를 선사했다. 도쿄와 와이구마노는 기차로 7시간 걸릴 만큼 멀지만 온라인 숙박을 통하면 단숨에 갈 수 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류는 덤으로 챙길 수 있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의 포스트 코로나#랜선 건배#온라인 숙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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