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5일 ‘무늬만 청(廳) 승격’이란 비판을 받은 질병관리본부(질본) 개편안을 백지화하고 전면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정부는 3일 질본을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시키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이 개편안은 질본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을 보건복지부로 넘기고, 복지부에 보건담당 2차관을 신설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어 복지부의 자기 밥그릇 늘리기로 이용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질본과 국립보건원을 분리시키는 방안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내에서도 반대가 심했던 사안이다. 특히 보건원의 감염병연구센터는 감염병 감시부터 치료제·백신 개발 및 상용화까지 감염병 대응 체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인데, 이 센터를 국립감염병연구소로 확대·개편해서 복지부가 직접 관할하겠다고 나섰으니 질본 개편의 취지와는 거꾸로 가려 한 것이다.
정부 부처가 국가적 재난 상황에 편승해 슬그머니 조직과 자리를 늘려온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효율, 옥상옥, 자리 늘리기 등 평상시에는 당연히 나올 지적도 위기 상황에서는 쉽게 하기 어려운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보건 담당 2차관 신설은 2015년 메르스 때도 복지부가 추진했으나 메르스가 종식되자 수그러들었다. 그러다 이번에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슬그머니 다시 들어간 것이다. 장기이식·혈액·인체조직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질본 내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을 복지부로 이관하려 한 것도 신설되는 차관의 업무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는 지적이 많다.
질본 개편안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질본의 감염병 대응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밥그릇 방안’들이 어떻게 끼어들었는지 기안부터 입법 예고까지 전 과정을 철저하게 밝혀 관련자에게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공무원들이 국가적 재난 상황을 틈타 자리를 늘리는 폐해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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