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늄의 ‘두 얼굴’[서광원의 자연과 삶]<21>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8일 03시 00분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유럽의 거리를 걷다 보면 창가에 놓인 꽃들이 많은 걸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참 많은 집들이 창가를 꽃으로 장식한다. 집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꽃병은 물론이고 벽에도 마른 꽃들이 걸려 있다. ‘역시 선진국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사실 유럽인의 이런 꽃 사랑에는 사연이 있다. 창가의 꽃들이 대부분 제라늄인 이유가 있다. 제라늄에 코를 대보거나 흔들어 보면 별로 즐겁지 않은 냄새가 난다. 꽃은 예쁜데 잎에서 나는 냄새는 영 아니다. 아름다운 겉모습과 다른 두 얼굴의 꽃인가 싶지만, 꽃에 무슨 윤리가 있으랴. 맞다. 사실 이건 제라늄이 생존 차원에서 마련한 자구책이다.

알다시피 식물은 움직일 수 없기에 벌레들이 몰려들면 속수무책이다. 그렇다고 가만있을 수도 없는 게 견딜수록 힘들어지고 참을수록 손해가 막심해진다. 참고 견딜수록 남김없이 다 먹어 버리니 말이다. 그래서 개발한 게 바로 이 냄새다. 꽃으로는 벌과 나비 같은 중매쟁이를 부르는 한편 잎으로는 이런 고약한 냄새를 풍겨 ‘나를 건드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이 제라늄 근처에는 벌레나 모기가 얼씬하지 않는다. 창가에 제라늄이 많은 이유다. 보기도 좋거니와 귀찮은 녀석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있으니 임도 보고 뽕도 딸 수 있는 격 아닌가. 마귀를 쫓는다는 신통력도 여기서 시작되었다.

집 안에 있는 꽃은 연원이 좀 다르다. 옛날 중부 유럽인과 영국인은 긴 겨울을 효과적으로 나기 위해 창문을 작게 만들었다. 열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만들 때 나는 연기와 냄새들이 빠져나가지 못해 집 안에 밸 수밖에 없었고, 고민하던 주부들은 향기 나는 꽃이나 잎을 집 안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꽃이나 잎을 말려 벽에 걸어놓거나 조리할 때 넣었고, 이걸 지속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화단을 가꾸었다. 이런 수요가 있어 허브가 자리를 잡았고 꽃을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지금도 유럽 영화에 거리를 돌아다니며 꽃을 파는 이들이 심심찮게 나오는 이유다.

뭐 아름다운 시작이 아니면 어떠랴. 어찌됐든 꽃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으니 좋은 일 아닌가. 연구에 의하면 책상에 작은 식물 하나만 키워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영국 엑서터대 연구팀에 따르면 창조성은 45%, 생산성은 38%나 향상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런 생명체에 시선을 두면 기분 전환이 되어 스트레스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요즘 코로나19로 활동반경이 줄어들면서 반려식물을 키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이 식물들에게서 생존법까지 한 수 배우는 건 어떨까. 좋은 사람에게는 향기를 주고, 악당들에겐 독한 맛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꽃을 보며 꽃 같은 사람이 되면 더 좋고.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제라늄#두 얼굴#유럽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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