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국”
우리는 민주주의 선택한 나라 아니었나
코로나 겪으며 지배권력 확대하고
홍위병처럼 異見 공격하는 전체주의
측근에 통치조직 맡기는 전근대국가로
여당이 총선에서 대승한 이후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나라 걱정이 사라진 것이다. 각계 전문가들과 전직 관료들이 공부하는 단톡방에선 “우리도 주는 대로 누려보자”는 쪽지가 돌았다. 재난지원금이든 기본소득이든 퍼주는 대로 받고, 만약 외환위기가 터질 경우 젊은 세대에 맡기면 그만이다.
북한 김여정이 죗값을 계산한다며 남북 핫라인을 끊어도 불안하지가 않다. 이 정부 첫 주일 대사 말대로 주한미군이 철수하든,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 말대로 준전시상황에 들어가든 근심할 필요 없다.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그럴수록 민주주의로 평화를 이뤄야 한다”고 10일 대통령이 천명을 했다. 대북전단 날리는 탈북민단체뿐 아니라 설령 군대를 해체한들, 선의로 가득한 한반도에 전쟁 나랴 싶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는 취지의 3일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 발언 때문이다. 미국 국무부에 이어 데이비드 스틸웰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9일 “민주주의를 선택한다면 옳은 선택을 한 것”이라고 까칠하게 반응해서만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미중 갈등이 신냉전으로 치닫는 상황에 문재인 정부가 미국 아닌 중국 선택하기를 넘어 아예 닮아가는 모습이어서다.
한국은 코로나19 발생 초기 대처에 실패했지만 다른 나라들이 더 실패하는 바람에 중국처럼 뜻하지 않게 방역 모범국으로 등극했다. 중국에선 감염자 급증 사실을 한 달 이상 은폐해 전 세계 피해가 커졌는데도 우한 시민들이 희생해 전파를 막았다며 되레 당당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에서 전염병 통제가 강력히 이뤄진 근본 원인은 공산당의 영도 및 사회주의 제도의 우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며 코로나 위기를 권력 확장에 이용하고 있다. 코로나 발생 초 우한시 통계청 책임자를 경질하고 사법부장(장관) 등을 속속 측근으로 교체한 건 물론,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모습이다.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첨단 정보통신기술까지 동원해 코로나를 극복하면서 시진핑은 권위주의 통치에서 마오쩌둥 시절의 전체주의로 돌아갔다”며 1930년대 같은 파시즘 부활을 이끌 수도 있다고 했다. 덩샤오핑이 흑묘백묘론으로 개혁했던 중국은 지금 없다. 중국공산당은 소련처럼 인민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물론 중국에 대한 세계인의 생각까지 좌우할 의도로 자유민주주의 기본 가치를 공격한다. 미국이 선전포고 같은 ‘대(對)중국 전략보고서’를 새롭게 내놨을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도 2월 야당 대표들과의 모임에서 초기 대처 실패라는 비판을 듣고 “상황이 종료된 뒤 복기하자”며 덮은 바 있다. 전문가들의 노고와 시민들의 협조로 코로나가 잦아들자 K방역을 내세워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에서 압승했다. 그 뒤 여권 인사들이 재판정에서 줄줄이 풀려나고, 단독 국회 개원을 불사하는 모습은 코로나 위기를 권력 확장에 이용한 중국과 다르지 않다.
특히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현대사 바로잡기에 앞장선 것은 국민의 머릿속까지 지배하겠다는 전체주의적 시도다. 여당 의원 177명 전원 명의로 5·18광주민주화운동 비방·왜곡처벌법을 발의한 것도 불길하다. 문 대통령과 생각이 다르면 ‘문파’가 홍위병처럼 공격하는 것도 모자라 국가가 ‘진실’을 결정하고 표현의 자유를 막겠다는 의도가 역력하다.
꼭 100년 전 이맘때 스페인독감으로 목숨을 잃은 독일의 막스 베버는 근대화에 이르지 못한 국가의 특징으로 가산제적(patrimonial) 사회질서를 꼽았다. 지배자가 통치조직을 사적으로 분배해 후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국가이익 아닌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전근대국가를 뜻한다.
가산제 국가를 근대국가로 만들기는 독재에서 민주화로 가기보다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지배자의 뜻에 따라 재가산제로 돌아가는 건 쉽다. 시진핑의 중국은 능력 위주의 관료들을 측근으로 채워 전근대국가로 후퇴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어떻게 발전한 대한민국인데 ‘운동권 청와대’가 정의연 출신 윤미향 같은 ‘운동권 네트워크’에 공직을 분배하고, 그들의 사적이익 추구에 눈감아 이 나라를 전근대국가로 후진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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