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강경정책으로 돌변했나[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1일 03시 00분


북한은 연일 한국 정부와 탈북자를 규탄하는 각계각층의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도자로서의 김여정의 존재감이 주민에게 부각되고 있다.8일 평양에서 열린 대학생 집회. 뉴스1
북한은 연일 한국 정부와 탈북자를 규탄하는 각계각층의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도자로서의 김여정의 존재감이 주민에게 부각되고 있다.8일 평양에서 열린 대학생 집회. 뉴스1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하늘로 날아오른 대북전단 풍선들이 북한에 갈 확률은 얼마나 될까.

바람을 따져 보내도 20% 남짓이란 데이터가 있다. 한반도 상공의 편서풍 때문이다. 지상의 바람 방향과 상관없이 풍선이 1500m 이상 올라가면 편서풍의 영향을 받는다. 이 고도면 눈으론 풍선을 거의 볼 수 없다. 풍선이 편서풍 고도까지 도달하고, 제트기류까지 감안하면 2시간 이내에 동해에 간다. 가끔 풍선을 터뜨리는 타이머가 오작동해 남쪽에 삐라를 쏟기도 하고, 타이머가 고장 나면 일본 후쿠시마 쪽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북한에 전단을 보내려면 1500m 이상 올라가지 않게 해야 한다. 과거 대북전단 업무에 종사했던 사람의 말에 따르면 이는 상당한 기술이 요구되는 작업이며 북에 갔다고 해도 대다수가 분계선에서 수십 km 이상 올라가기 어렵다.

백령도에서 날리면 남포 정도까지는 간혹 가지만, 파주나 임진각에서 날린 풍선이 평양까지 갈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특정 날짜를 정해 기자들을 불러 이벤트성으로 날려 보내면 풍향에 대한 고려가 우선되지 않았기에 거의 가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다.

대북전단 단체가 후원자의 신뢰를 쌓으려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한 위치정보 정도는 보여줘야 하는데, 데이터를 검증받는 장면은 본 적이 없다.

대북전단의 내용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일베 사진 합성 수준의 낯 뜨거운 내용이나 선교 전단도 많다. 황해도에서 전단을 봤다는 탈북자를 몇 명 만나보니 “자기들(전단을 살포한 탈북자들)은 남쪽으로 도망가 놓고 북에 있는 우리 보고 목숨 걸고 싸우라고 하니 오히려 화가 났다”는 반응들도 있었다.

김여정의 4일 담화문은 “5월 31일 ‘탈북자’라는 것들이 전연 일대에 기어 나와 수십만 장의 반공화국 삐라를 우리 측 지역으로 날려 보내는 망나니짓을 벌여놓은 데 대한 보도를 보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날려 보냈다’가 아니라 ‘보도를 보고 알았다’는 식인데, 아마 31일에 날렸다는 전단은 보지 못한 듯한 뉘앙스다.

전단 살포가 하루 이틀도 아닌데, 북한이 지금 이를 문제 삼아 대남 강경정책으로 돌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내부적 원인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쌓인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1월 23일자 칼럼 ‘보위성 재신임한 김정은, 공포통치 시작된다’에서 올해 북한의 행보를 예상했다.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로 경제가 점점 파탄나자 북한은 민심을 통제하기 위해 지난해 말에 이미 공포통치 시나리오를 짰다. 보위성은 올해 상반기 간첩단 사건들을 조작해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려고 계획했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이 계획은 미뤄졌고, 간첩 대신 탈북자를 도마에 올리는 것으로 수정된 듯하다. 어차피 둘 다 군중대회를 열고 ‘타도하라’ ‘죽여라’를 외치는 것은 똑같다.

김정은은 후계자로 결정되자 탈북을 완전히 막겠다는 것을 첫 공약으로 내걸고 2009년 1월 김정일에게서 보위기관을 넘겨받았다. 최근 대남기관을 넘겨받은 김여정도 탈북자를 활용해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전국에서 연일 진행되는 집회를 통해 김여정의 담화는 자연스럽게 최고 지도자의 교시처럼 부각되고 있다. 향후 북한 내부 상황의 악화를 김정은 혼자 감당하긴 버거워, 남매가 공동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북한이 남쪽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는 오래다. 김정은은 작년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재작년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했을 여러 약속의 이행을 기대한 듯하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작년 5월 쌀 5만 t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을 뿐, 1년 반 가까이 움직이지 않았다. 북한이 원한 것은 쌀이 아니었다.

김정은은 배신감을 느낀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대해 북한이 ‘삶은 소대가리’를 운운하며 맹비난하던 즈음부터 북한의 대남 성명에는 감정적 분노가 서려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현실성 없는 제안만 계속 던져 북한을 정치에 이용한다는 불만으로 읽혔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전단 금지법’으로 풀 성격이 아니다. 또 이미 때도 놓쳤다. 현 정부 임기는 2년도 채 안 남았다. 북한이 미국 대선을 대비해 지금쯤 전략 수정을 준비할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남은 시간이 없다. 획기적인 발상이 없으면 남북관계는 계속 악화될 것이다. 다만 시간에 더 쫓기는 것이 북한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남북관계#대북전단#북한의 강경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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