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주요 도시의 광장에 가면 청동 기마상을 흔히 볼 수 있다. 대부분 강력한 황제나 전쟁 영웅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흔들 목마를 탄 아이를 표현한 이 청동상도 광장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전통적인 기마상과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면 이 조각상은 무엇을 기념하기 위한 걸까? 작품을 제작한 엘름그린과 드라그세트는 덴마크 출신의 미카엘 엘름그린과 노르웨이 출신의 잉가르 드라그세트로 이뤄진 예술가 듀오다. 이들은 공공장소에서 쉽게 접하는 조형물이나 표지판 등의 각종 시각 언어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어떻게 하나의 기표로 작용하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탐구해 왔다. 이 작품 역시 공공 조형물에 대한 유머와 역설을 담은 것으로, 2012년 ‘4번째 좌대 프로젝트’를 통해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18개월간 전시됐다.
트라팔가르 해전 승리를 기념해 조성된 트래펄가 광장에는 넬슨 제독 동상을 중심으로 4개의 좌대가 놓여 있는데, 그 위에는 조지 4세의 기마상을 비롯해 19세기 전쟁 영웅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네 번째 좌대는 원래 윌리엄 4세의 기마상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자금 확보 문제로 150년 이상 비워 있다가 1999년부터 혁신적인 공공미술의 무대가 됐다. 이 황금빛 청동상은 2012년 선정작이다. 역사적으로 기마 동상은 왕이나 장군의 힘과 권력, 지도력을 상징한다. 하지만 작가는 예술이 권력의 표현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비판한다. 높이 4m에 달하는 이 거대한 기마상에는 무기를 든 기수도, 용맹한 말도 없다. 흔들 목마를 타고 노는 어린아이만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성장하기 위해 매일 전투를 벌인다. 좌대 위에 놓인 아이는 전쟁 영웅의 지위에 오르지만, 기념할 만한 역사는 없고, 오직 희망찬 미래만 가지고 있다. 작가는 미래 세대의 희망을 찬양한다.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어른들의 전쟁이 아니라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이라는 일깨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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