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남자. 7923번 환자와 접촉. 오전 3시 59분∼4시 11분 서울대 입구 세븐일레븐 이용. 근처 이자카야에서 2시간 동안 음주…오후 7시 12분 성신여대 근처 영화관에서 ‘인비저블맨’ 관람. 맨 끝줄에서 마스크 안 쓴 채로.’ 정부가 공개한 코로나19 8074번 환자의 동선 정보다. 우리에겐 일상이지만 외신은 “한국에선 이런 것까지 공개한다”며 그 구체성에 놀라곤 한다.
▷‘K방역’의 핵심인 동선 추적 역량의 배경엔 스마트폰, 신용카드, 폐쇄회로(CC)TV라는 3대 디지털 인프라가 있다.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5%로 세계 1위, 신용카드 이용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인구 3.7명당 CCTV가 1대꼴인 CCTV 대국이다. 코로나19 초기엔 역학조사관이 통신사와 카드 회사에 전화해 자료 받고 CCTV 영상을 돌려 보며 추적하는 데 24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올 4월 정부가 개발한 역학조사 지원 시스템을 활용하면 28개 기관과 실시간 정보 교환으로 1, 2시간이면 동선 추적이 끝난다.
▷이보다 더 빠른 방식이 QR코드 기술을 활용한 ‘전자출입명부’다. 특정 시설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위험군을 추리는 데 20분이면 된다고 한다. 이제 유흥주점 헌팅포차 노래방 같은 위험 시설에 가려면 네이버 앱에서 개인정보를 입력한 후 일회용 QR코드를 발급받아 출입문에서 제시해야 한다. 관리자는 QR코드에 담긴 정보를 인식기로 읽어내 출입자 방문 기록을 만든다.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때 방명록이 엉터리로 기재돼 역학조사에 어려움을 겪은 후 도입한 제도다.
▷중국은 지방 도시별로 일찌감치 QR코드를 활용하고 있다. 개인 정보와 여행 이력, 확진자나 의심환자와의 접촉 여부, 발열이나 기침과 같은 증세를 입력하면 위험 정도에 따라 세 가지 색상의 QR코드를 발급받는다. 녹색 코드는 시내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노란색은 7일간, 빨간색은 14일간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지방 정부가 개인의 이동권까지 통제하는 것은 지나친 사생활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프라이버시는 소중하지만 안전을 위해 침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안전한 밤거리를 위해 도처의 CCTV를 감내하듯, 감염 의심자의 정보를 수집해 공개할 수 있도록 감염예방법을 만든 것도 2015년 메르스를 겪고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QR코드는 중국, 싱가포르,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제외하면 도입한 나라가 없다. 정부든 기업이든 개개인의 동선을 꿰고 있는 기관이 이 정보를 선한 용도로만 활용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를 양보해야 할 때가 있지만 그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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