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천루 시장은 지난 20년간 급속히 성장했다. 9·11테러 이후 그라운드 제로 재건 국제 공모전에서 당선작을 낸 미국 유대인 건축가 대니얼 리버스킨드는 일약 스타가 되어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았다. 국내에도 해운대아이파크(2011년 준공·높이 292.1m·국내 6위)와 용산 마천루 계획안을 선보였다.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 횃불을 모티브 삼아 마천루 군을 디자인했다면, 용산에는 신라시대 왕관을 모티브 삼아 마천루 군을 디자인했다. 3개의 용산 마천루가 눈길을 끌었다.
첫째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의 620m 높이의 중심 마천루, 둘째 미국 건축가 에이드리언 스미스의 ‘댄싱 드래건’(용산 지명에서 따옴) 마천루, 셋째 네덜란드 건축설계사무소 MVDRV의 ‘구름’ 마천루였다. 마천루의 혁신적 형태도 멋졌지만, 리버스킨드의 한강변 마리나 파크와 야외 보행 쇼핑몰이 있어 세 마천루가 더욱 빛났다. 2008년 금융위기로 세 마천루와 한강 수변 파크가 무산된 것은 못내 아쉽다.
강 건너 여의도에는 다음 달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의 파크원(333m·국내 3위)이 준공된다. 하이테크 건축가로 1990년대부터 부상하기 시작한 로저스는 엘리베이터를 투명하게 외부로 빼고, 마천루 기둥을 유리 밖에 두는 마천루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파크원도 그럴 예정이다. 로저스가 공공을 위해 신경을 쓴 점은 여의도 공원과 IFC(2012년 준공·285m·국내 8위) 마천루 군을 단절 없이 이어주는 것이다. 내부에서 반원을 그리는 쇼핑몰 동선 체계가 바로 그 해결책이다. 로저스는 이곳에서 가벼운 케이블 천장 구조를 선보인다. 천창에 스미는 자연광이 경쾌한 철의 조형미를 밝힐 참이다.
사실 용산과 여의도는 공항에서 차를 타고 들어오면 서울 초입이다. 서울의 국제적 위상을 처음으로 대면하는 대문이다. 따라서 이 두 곳의 마천루는 패기와 힘의 결집이어야 하며, 자부와 자존의 결정체여야 한다. 마천루 땅으로는 용산이 여의도보다 낫다. 왜냐하면 한강은 W자형을 그리며 흐르고, 태양은 하루 중에 남쪽에 걸려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강 변곡점에 세워지는 마천루들이 랜드마크가 될 확률이 높고, 남향 땅에 세워지는 마천루들이 태양의 반사효과를 톡톡히 본다. 그러니 ‘용이 비상하는 땅(용산·龍山)’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마천루를 세워야지 용이 고꾸라질 건물들을 이곳에 세워서는 안 될 일이다. 잠실 롯데타워(2016년 준공·555m·국내 1위)는 이제 사방에서 보인다. 멀리 성남에서도 보이고, 강 건너 부암동에서도 보인다. 그래도 타워 조망의 백미는 퇴근 시간 강남 남부순환도로상이다. 이 시간에 타워는 석양을 받는다. 형태는 위로 갈수록 모아지고, 어느 높이에서부터는 양파처럼 껍질이 벗겨지고 숨은 껍질이 드러난다. 푸르고 붉은 노을 아래서 두 껍질 사이로 태양과 인공조명이 서로 교차하며 교체한다. 건축설계사무소 KPF의 겹겹이 건축외피 미학의 정수다.
삼성역 한전 부지에 세워지는 GBC 타워도 이제 착공에 들어간다. KPF의 경쟁사인 SOM 디자인이다. GBC 관전 포인트는 롯데타워와 사뭇 다르다. GBC의 묘미는 5454m² 정도의 정사각형 평면이 위로 갈수록 크기의 감소 없이 569m까지 똑바로 올라가는 점이다. 이 타워의 구조적 도전은 궁금하다 못해 아찔하다. GBC는 마천루의 끝이 평평하고, 롯데타워는 뾰족하다. 강남 하늘은 두 푯대 사이에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에 지어질 마천루들은 세간에서 말하는 ‘마천루의 저주’일까 아니면 ‘마천루의 축복’일까? 마천루는 호황에 착공하고, 불황에 준공하기 때문에 마치 전자가 불변의 진리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호황기와 불황기가 모두 지나고 나면 마천루는 도시의 사랑과 자랑으로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노래하듯 주문하자. 솟아라 솟아라 서울이여, 천지인을 살리며 솟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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