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보건소에 전화를 건 민원인이 다짜고짜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 입국해 자가 격리 중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격리되면 지방자치단체가 기본 생필품을 전달한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추가 메뉴’를 요구하는 격리자가 많다. 심지어 집에 와서 밥을 해 달라거나 애완견 사료를 구입해 달라는 요청도 있다.
그나마 철없는 격리자는 낫다. 방역 현장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고성이 끊이질 않는다. 아파트 단지에서 역학조사를 하면 “몇 동 몇 호에서 확진자가 나왔냐”며 따지듯 묻는 주민들이 꼭 있다. 조사 중이라고 답하면 “만약에 내가 출근했다가 확진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며 윽박지른다.
해외 입국자를 아파트에 오지 못하게 하라는 주민들도 있다. 해외에서 오면 자신의 집에서 2주간 격리 생활을 한다. 그런데 말려야 할 관리사무소까지 나서서 “무조건 보건소가 막아라”라고 요구했다. 불가능한 민원인데도 주민들은 보건소 직원에게 “그러니 공무원이 무식하단 소릴 듣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건소의 여직원은 자가 격리 이탈자를 어렵게 찾아낸 뒤 “고발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대방은 “시민을 협박하느냐”며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내뱉었다. 해당 여직원은 충격을 받고 결국 다른 부서로 옮겼다.
방역의 최일선인 보건소의 업무 과부하는 이미 위험 수위다. 감염병 담당 직원들에게 휴식이나 주 5일 근무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근무 체계는 모두 24시간이다. 퇴근해도 사무실에서 쪽잠 자는 직원이 대부분이다. 확진자가 언제 발생할지 몰라서다. 겨우 집에 가도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는 연락이 오면 새벽에라도 현장에 나간다.
아파도 방법이 없다. 치료도 순번 정해 돌아가면서 할 정도다. 과로로 쓰러져도 대체할 인력이 없어 수액 맞고 다시 역학조사 현장이나 선별진료소로 향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여성 직원들의 고충은 더 심하다. 경기지역 한 보건소 감염팀장은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직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정말 죽을 것 같다’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얼마 전까지는 그래도 공무원이라는 사명감으로 일했지만 이제는 더 버틸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요즘 대부분 수도권 보건소의 상황이 이렇다. 직원들이 직접 본보 기자들에게 하소연한 내용이다. 최근 수도권에는 하루 수십 명씩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다. 확진자 한 명이 발생하면 접촉자와 자가 격리자가 100명, 200명 나오는 게 기본이다. 바쁘고 힘들다는 표현으론 설명이 어렵다. 그야말로 전장(戰場)이다.
방역당국은 연일 2차 대유행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질병관리본부 ‘청’ 승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7일 브리핑에선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무회의 통과를 알리며 “2차 대유행을 고려할 때 국가적으로 꼭 필요하고 시급한 과제”라고 밝혔다. 일단 논란이 됐던 국립보건연구원은 승격될 질병관리청에 남게 됐다. 보건 분야를 담당할 보건복지부 2차관도 신설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조직 개편의 폭이 넓어졌다. 향후 시행령에 담아야 할 내용도 많아지고, 준비 과정도 복잡할 것이다. 새로운 조직이 제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현재 확산세를 보면 오히려 2차 대유행의 시기는 당겨질 수 있다. 그만큼 시시각각 달라지는 현장 상황이 중요하다. 조직 개편도 중요하지만 더 늦기 전에 현장의 과부하를 해결할 대책이 필요하다. 자칫 어느 한 곳에 작은 틈이 생기면 가을이 오기 전에 수도권 방역의 둑이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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