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청동기 유적 위에 테마파크를 만들겠다고 해서 문화재 훼손 논란을 일으킨 강원 춘천시 중도 ‘레고랜드’ 사업자 측이 호텔과 전망타워 기초공사를 위해 유구(遺構)가 있을 확률이 있는 땅속 깊이 콘크리트 말뚝을 박겠다고 나섰다. 4년 전 사업자 측이 스스로 제안한 시공법을 무시한 것이다. 18일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위원회에 따르면 강원도와 강원중도개발공사, 레고랜드 코리아는 레고랜드 터에 들어설 두 건물의 기초 시공법을 바꾸겠다고 지난달 및 이달 17일 두 차례 신청했다. ‘(건물 터가) 연약 지반의 장기 침하 가능성이 높아 파일(pile) 기초 시공을 제안한다’는 것. 지반이 약해 건물 하중을 버티기 어렵기에 파일을 박아 보완하겠다는 얘기다.
문화재위 매장분과위는 두 차례 신청 모두 가부 결정을 보류했다. 매장분과위원장인 이청규 영남대 교수는 1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말뚝을 얼마나 깊고 넓게 박는 것인지, 기존 유구층과의 관계는 어떤지(훼손의 소지는 없는지) 관련 자료 보완을 요구했지만 사업자 측은 두 번째 신청할 때도 이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고 보류 사유를 밝혔다.
건물 규모나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길이가 보통 10m 이상인 기초용 말뚝은 수십 m 깊이로 박는다. 이렇게 시공된 수십 개 말뚝이 유구층(유구가 있는 지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는 어쩌면 당연하다. 사업자는 두 건물이 들어설 터 아래에는 유구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입증되지 않았다. 말뚝 하단이 닿을 것으로 예상되는 깊이까지 발굴 조사한 적도 없다. 이 위원장은 “중도는 거의 청동기시대 지층까지 발굴했지만 그 아래층에 신석기시대 유구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말뚝이 깊이 내려가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구가 있는지 없는지 파보려면 현재 보존 중인 청동기 유구층을 훼손할 수밖에 없어 문화재 보존 문제가 따른다.
호텔은 6층, 전망타워는 59.8m 높이로 지을 예정이다. 당초 사업자 측은 2016년 4월 땅을 깊이 파지 않고 벌집 모양 구조물을 바닥에 까는 ‘허니셀 기초’ 방식으로 시공하겠다고 문화재위에 보고했다. 4년이 지나 ‘전문가 검토 결과’ 지반이 약하다며 말뚝을 박겠다고 돌변한 셈이다. 지반이 그동안 갑자기 약해진 것일까, 아니면 4년 전 허니셀은 고층 건물에는 잘 쓰이지 않는 시공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업자 측이 건축허가를 받으려고 얼버무린 것일까. 문화재위는 시공 방식 변경을 요청하게 된 경위도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문화재위는 국민을 대신해 문화재를 보호하는 마지막 보루다. 사업자 측은 지난달 공법 변경을 처음 신청할 때 기초적인 건물 배치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화재위, 아니 국민을 대하는 자세를 짐작할 만하다. 방대한 문화재 유존(遺存) 지역에 대규모 건설공사가 허가되는 ‘기적’을 봤으니 ‘말뚝 정도야…’ 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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