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풀 미풍에 하늘대는 강 언덕, 높다란 돛대 올린 외로운 밤배./광활한 들판으로 별들이 쏟아지고 흘러가는 큰 강 위로 달이 용솟음친다./명성이 어찌 문장으로 드러나리? 관직마저 늙고 병들었으니 그만둘밖에./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 무엇에 비기랴. 천지간에 한 마리 갈매기라네. (細草微風岸, 危檣獨夜舟. 星垂平野闊, 月涌大江流. 名豈文章著, 官應老病休. 飄飄何所似, 天地一沙鷗.) ―‘떠도는 밤, 회포를 적다(여야서회·旅夜書懷)’ 두보(杜甫·712∼770)
별빛 쏟아지는 평원, 달빛 넘실대는 강, 더없이 느긋하고 평온한 밤이었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한갓진 유람길이 아니다. 가족을 거느린 시인은 배를 하나 얻어 쓰촨(四川) 지역을 무작정 떠돌아야만 했다. 이따금 자신의 시명(詩名)을 높이 산 지방관들이 연회에 초청하면 얼마간 숙식은 해결할 수 있었지만 거처불명의 떠돌이 신세를 면키는 어려웠다. 안녹산의 난이 막 휩쓸고 간 뒤끝이라 사회는 혼란했고 자신을 아껴주던 절도사의 죽음, 관직에 있는 조카로부터의 냉대, 간관(諫官)으로서 올곧게 나서다 빚어진 주변 관료와의 불화, 보직 없이 허명뿐인 관직 등 개인적인 불운까지 겹치던 시기였다.
당시 두보는 사대부 사이에 제법 시명이 알려져 있었고 또 현종에게 문장을 지어 올려 한때나마 인정을 받기도 했기에 그 나름대로 문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 “황제가 요순(堯舜)의 반열에 오르도록 보필하고 세상 풍속을 후덕하게 하겠다”는 그의 꿈은 현실과 괴리가 컸다. 문장으로 명성을 드러낼 수 없다는 건 자포자기 같기도 하고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원망을 반어적으로 항변한 듯도 하다. ‘늙음과 병’은 불우했던 선비들이 으레 내세웠던 구실, 하지만 쉰넷의 시인으로서는 결코 엄살일 수만은 없는 절박한 탄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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