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아주 어렸을 때 아빠가 돌아가셔서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요. 아빠를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형제의 간절함이 마법을 부려요. 형제는 아빠를 죽음의 세계로부터 불러내어 단 하루 만날 수 있는 기적 같은 기회를 얻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 현실로 소환되던 아빠의 몸이 하반신만 완성된 거예요. 형제는 아버지의 온전한 모습을 찾기 위해 마법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지요.
어때요? 17일 개봉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온워드’)의 줄거리예요. 여기까지 들으면 결말이 불 보듯 뻔하지요? 결국 천신만고 끝에 형제는 상반신을 되살려 아버지의 본모습을 완성한다. 아빠와 감격의 재회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빠는 하루라는 시간이 다해 이내 죽음의 세계로 돌아간다. 형제는 아빠와의 짧지만 소중한 만남을 통해 아빠 없는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지혜를 얻는다, 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에요. 이 영화를 결말까지 보고 있노라면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의 창의적이고도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을 우린 죽을 때까지 못 따라갈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까지 들어요.
무슨 말이냐고요? 온워드는 아빠의 아이덴티티인 얼굴이 담긴 상반신을 관객이 궁금해하도록 유인한 뒤 관객의 이런 기대를 훌쩍 뛰어넘어 버려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아빠의 반쪽이 아니에요. 심지어 아빠의 정체도 아니에요. 아빠의 반쪽을 찾아 떠나는 형제의 여정 속에서 ‘아빠만큼이나 아빠다운’ 형의 존재를 동생이 깨닫게 되는 데에 있지요. 맞아요. 아빠는 돌아가셨어요. 대책 없이 그리워하고 눈물을 쏟기보단 아빠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것, 혹은 형에게서 아빠를 발견하는 것, 혹은 동생에게 아빠 같은 형이 되어주려 노력하는 것만이 아빠를 내 안에 담아두는 더 아름답고 영원한 방식이지요.
자, 그러면, 왜 동서고금 수많은 영화들이 유독 가족애를 다룰까요? 삼각형이나 오각형을 보면 마음의 안정을 얻듯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가장 안정적인 ‘심리도형’이 가족이기 때문이에요. 한번 떠올려 보세요. 우리를 근원적으로 사로잡는 대중문화 콘텐츠들을 사려 깊게 관찰해보면 가족 혹은 그 변형된 형태가 정말 많답니다.
‘독수리 5형제’를 보세요. 실제론 멤버 5명 중 독수리는 1명뿐인 데다 여성 멤버도 있으니 ‘조류 5남매’란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 멤버 1호인 ‘건’(독수리)은 아빠를, 3호 ‘수나’(백조)는 엄마를, 4호 ‘뼝’(제비)은 장난꾸러기 아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요. 성질 더러운 2호 ‘혁’(콘도르)은 우두머리 ‘건’을 내치고 ‘수나’를 차지하려는 옆집 아저씨를, 뚱뚱하고 성격 좋은 5호 ‘용’(부엉이)은 충직한 하인을 연상시키지요. 이 멤버 중 ‘건’과 ‘수나’와 ‘용’만 쏙 뽑아내 3인조로 만들면 김태형, 이상원, 정원관으로 구성된 그룹 ‘소방차’가 되고요. ‘어벤져스’도 마찬가지예요. ‘아이언맨’은 유서 깊은 양반 집안의 돈 많은 할아버지, ‘캡틴 아메리카’는 아빠, ‘블랙 위도우’는 엄마, ‘토르’는 미친 장남, ‘헐크’는 더 미친 차남, ‘호크 아이’는 동네 형(실업자)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겹치지요.
아, 이거 해보니 재미나지요? ‘로보트 태권V’에서도 가족의 원형이 발견된다는 사실! 대머리 ‘김 박사’는 아빠, 김 박사의 아들 ‘훈’은 장남, ‘윤 박사’는 엄마, 윤 박사의 딸 ‘영희’는 막내딸을 떠올리게 만드는 일종의 유사(類似)가족이지요. 우리가 이 만화영화를 보면서 태권V를 공동으로 조종하는 단짝 훈과 영희가 왠지 연결되어선 안 될 것만 같은 불안과 걱정을 느끼게 되는 마음의 근저에는 근친상간에 대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음을 이젠 아시겠지요? 와우, 또 있네요. 채널A 예능프로그램 ‘도시어부’의 원년 멤버인 이덕화-이경규-마이크로닷은 각각 과묵한 아빠-수다스러운 엄마-아무 생각 없는 아들을, 또 다른 예능프로 ‘라디오스타’의 대표 멤버였던 김국진-김구라-윤종신-규현은 각각 인정 많은 할미(할머니)-독기 어린 아빠-수다스러운 엄마-사춘기 아들을 우리도 모르게 떠올리게 한답니다. ‘뽕숭아학당’의 임영웅-영탁-이찬원-장민호는 각기 엄마-아빠-아들-큰아버지의 이미지와 포개어지고요.
어쩌면 우리가 이들에게서 행복감을 느끼는 건 해체되어가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이들이 무의식중에 일깨워주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과한 생각도 해보아요.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 가족은 비록 부잣집에 빨대 꽂고 살아가는 사기꾼 가족이고 결국 서로를 파멸로 이끌지만, 그래도 제가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가족다운 가족이었어요. 누가 뭐래도 이들은 끝까지 자신들이 ‘같은 편’이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니(네) 사촌”이라는 송강호 딸의 노랫말이야말로 가족보다 더 단단한 운명공동체(동시에 경제공동체)의 자기주문이었던 것이지요.
의붓아버지가 딸의 손을 프라이팬으로 지지는 인면수심 가족, 백두혈통 남매만이 통치자격이 있다는 어불성설 가족이 엄존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우린 어느새 비(非)가족적인 가족보단 차라리 가족적인 비(非)가족을 더욱 아름답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가족애 없는 가족이야말로 단팥 빠진 찐빵이고, 면도 없는 이발이며, 서태지 없는 아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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