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식년을 한국에서 보내기 위해 입국하여 자가 격리 중 생각해 보니, 지난 3개월은 미국에서 살아온 17년의 시간 중 가장 혼란스러운 기간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자택 격리로 인한 사회경제 문제들은 미국 사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차차 경제활동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5월 말에 일어난 일련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공권력에 의한 희생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미국 사회를 넘어 전 세계인에게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로스앤젤레스, 오렌지카운티, 샌디에이고로 연결되는 남캘리포니아에서 자란 학생들과 대기오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 보면 대기오염 문제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나라도 다소 지역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번 대기질이 악화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좁게는 광역시 범위에서 넓게는 나라 전체, 더 나아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의 대기질이 다 저하되기 일쑤다. 따라서 개개인의 경제적 위치에 상관없이 공공의 폐해로 대기오염을 인식한다.
하지만 남캘리포니아의 대기오염 분포는 지역적으로 매우 불균형적인 경우가 많다. 남캘리포니아 지역의 서쪽에는 태평양이 자리하고 있고 동쪽 지역은 산가브리엘 산맥을 끼고 있다. 이러한 지형의 영향으로 낮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해풍은 도심지의 오염물질을 내륙으로 이동시키고 오염물질은 산맥에 가로막혀 산 아래 지역에 정체된다. 따라서 미세먼지나 오존 같은 2차 오염물질이 주로 산 아래 지역에 집중적으로 생성돼 농도가 높아진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샌타모니카나 말리부 지역같이 해안가에 위치한 부촌은 태평양 수준의 청정한 대기질을 유지하지만 리버사이드나 샌버너디노같이 주로 서민이 거주하는 산가브리엘 산맥 인근 지역은 건강이 위협받을 정도로 대기질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국내 언론에도 최근 소개됐지만 코로나19 창궐 이후 캘리포니아의 자택 대기 명령으로 지난 석 달가량 교통량이 크게 줄어 질소산화물과 같은 오염물질 양은 급속도로 줄었다. 하지만 공기 중 화학작용에 의해 생성되는 오존의 경우 날이 더워지면서 화학반응이 빨라져 그 감소량이 미미한 것으로 관측됐으며, 특히 샌버너디노 지역의 경우 종종 오존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여전히 문제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위치한 공업 시설 및 항만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은 인근 지역의 서민 계층에 불균형적으로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화물들이 대부분 거치는 로스앤젤레스 롱비치항 인근 지역인 윌밍턴의 환경운동가 제시 마퀘즈 씨는 주민을 대표해 항만 관련 회사 대표들과 협상테이블에 앉았을 때 가장 먼저 회사 대표들의 거주지부터 묻는다고 한다. 한결같이 이러한 기업인들은 항만에 출입하는 대형 트럭이나 정박된 화물선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항구에서 멀리 떨어진 쾌적한 지역에 거주한다고 한다. 따라서 항구 인근 주민이 느끼는 대기오염 문제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최근 안 좋아진 경제 상황을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환경 규제를 전면 해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많은 우려가 일고 있다. 물론 이러한 해법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불균형적 피해를 줄 것이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성향에 따른 환경 규제와 경제정책의 우선순위 차이가 늘 미국에서 존재해 온 것은 아니다. 전 세계 대기 환경 관리법의 표준으로 받아들여지는 미국 연방 대기 청정법이 쓰였던 1960년대 후반, 미국 상원은 공화, 민주 양당 의원들과 보좌진이 정치적 차이에 관계없이 가장 효과적인 법령을 제정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다. 훗날 보수적인 레이건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하워드 베이커 당시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은 환경 기준을 강화하면 민간의 기술 확보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강화된 환경 기준을 적극 찬성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대기 환경에 대한 관심과 깨끗한 공기에 대한 열망이 전 국민층에서 높다는 것은 문제 해결에 있어 대단히 고무적이다. 이러한 열망과 관심을 바탕으로 여야는 정견을 뒤로하고 과학과 기술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정책 및 규제를 수립해야 할 것이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skim.aq.20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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