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심리유형검사)가 유행이다. 초등학교 시절 한 번씩은 다 해봤던 그 MBTI 이야기가 맞다. 그 옛날 혈액형별 유형 구분이 일반적이었듯 요즘은 MBTI로 통한다. 이를테면 “너 B형이지?”를 “너 E형이지?”가 대체한 셈. MBTI는 4개의 기준에서 각각 양 극단을 나타내는 지표를 조합해 총 16가지의 성격 유형을 제시한다. 에너지의 방향(E 외향성-I 내향성), 선호하는 인식 방법(S 감각형-N 직관형), 선호하는 판단 방법(T 사고형-F 감정형), 선호하는 삶의 패턴(P 판단형-J 인식형).
이 중에서도 시작이 ‘I’이냐 ‘E’이냐가 주요 쟁점인데, 이는 마치 활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더러는 ‘인싸’와 ‘아싸’까지도) 구분하는 척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는 ENFJ, ‘정의로운 사회운동가형’이다. 하지만 ‘에너지의 방향’이 어디냐고 묻는 것이었다면 무조건 I(내향성)여야 맞았다. 애초에 70억 인구를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니(심지어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테스트는 정식 테스트와도 다르다) 재미로 봐야 맞지만, 문득 반기를 들고 싶어지는 지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비동의. ‘보통 대화를 먼저 시작하지 않습니다.’ 비동의. ‘주목받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비동의. 활발한 편이고 사람들 만나기를 즐긴다. 하지만 이는 내가 에너지를 얻는 방향과는 무관하다. 1시간의 모임을 위해서는 2시간의 홀로됨이 필요하고, 주말 이틀 중 하루는 가능한 한 혼자 시간을 보낸다. 함께 먹는 점심도 좋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조용히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식사를 즐긴다. 사춘기를 난 이래로 줄곧 혼자만의 물리적, 심리적 공간은 나를 지탱하는 필수요건이었다.
한때는 이런 자신이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았다. 원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데 애써 노력하는 것인가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니었다. 만남과 교류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그로부터 얻는 즐거움과 위로 또한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학부 시절, 도리스 레싱의 소설 ‘19호실로 가다’를 읽었다. 겉보기로는 완벽한 가정의 엄마 수전은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자 매일 외진 호텔의 ‘19호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완전히 고립됨으로써 그는 비로소 온전한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 이를 알아챈 남편이 불륜을 의심하지만 그는 해명을 포기한다. 어느 미디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해받지 못할 걸 설명하는 것보다 미친년이 되는 것이 더 나으니까.”(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본 책을 소개하며)
어쩌면 나는 그저 남들보다 좀 더 자주 많은 19호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는지도. 간헐적 고립의 욕구를 해소해 줄, 그럼으로써 다시 역할과 관계 속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채워 줄 자기만의 공간. 누구에게나 19호실은 필요하겠지만 그 빈도와 크기는 제각각이어서, 누군가에게는 평생에 찰나이면 족할 것이 누군가에게는 매일을 지탱하는 구성 요소일 수도 있다. 그리고 E나 I 같은 지표는, 그 내밀한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
예능을 다큐로 받아들이는 ‘진지충’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순전한 노파심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MBTI는 고개를 들어 서로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어 줄 뿐이다. 그 다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표 너머의 대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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