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을 오로지 돈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동맹 경시가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7월 외교안보 참모들에게 “우리가 왜 한국전쟁에 나가 싸웠는지, 왜 여전히 한반도에 대규모 주한미군이 주둔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털어놨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얼간이가 되는 것을 끝낼 것”이라며 실질적 조치 가능성까지 드러냈다.
트럼프는 재작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선 한미 훈련을 줄여 달라는 김정은의 요구에 “한미 훈련은 도발적이고 시간과 돈 낭비”라고 말했다.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참모들과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고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발표한 것도 즉흥적인 결과물이었다. 하노이 북-미 협상 결렬 이후엔 “우리는 전쟁에 10센트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심지어 북한이 초대형 방사포와 미사일을 발사하자 “(한국에) 돈을 달라고 할 적기(適期)”라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에 활용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한미연합 지휘소 훈련이 열렸던 지난해 8월엔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 합의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거기에서 나오라”고 말했다. 동맹의 위기마저도 돈을 벌 기회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백악관을 주도하고 있으니 한미동맹의 미래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집권 초기부터 동맹과 다자안보보다는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한 신고립주의 성향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려고 했다. 트럼프가 재선되면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를 앞세운 동맹 비용 문제가 최대 현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다고 해도 이런 기류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이미 세계경찰 역할에 피로감을 호소해온 지 오래다.
6·25전쟁 70주년을 맞는 우리의 안보 현실은 핵보유국을 자처하는 북한의 도발과 중국의 팽창주의, 그리고 이를 견제할 힘의 축인 한미동맹마저 흔들리는 총체적 위기다. 트럼프식 외교 폭주가 예상되는데도 이를 조율하고 설득할 우리의 외교역량은 보이지 않는다. 한미동맹이 흔들릴 경우 북한의 핵위협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심도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한반도 주변 정세는 우리에게 안보 자구책을 준비하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한미동맹이 없는 시대까지도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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